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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무진기담] 그 비오는 날, 눅눅한 방울 소리, 무진과 곡성 그 사이의 안개 없는 폐촌에서

벌써 2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저는 원래 가방 하나만을 등에 지고서 이곳저곳을 떠돌며 여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해가 구름에 가려져 울적했던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길을 거닐다가 지쳐 잠시 외딴 곳에 위치한 낡은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사람 하나 없는 폐촌과 가파른 산 사이에 껴있어 이런 곳에도 버스가 다니는구나 하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잠시 의자에 등을 붙이고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졸음이 제 몸을 끈적하게 휘감았습니다. 그 찝찝한 졸음 때문에 저는 결국 순식간에 곯아떨어져 해가 산봉우리에 걸려 넘어가기 직전에 눈을 떴습니다. 폐촌과 산 가운데에 홀로 서있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절 지켜주었던 햇빛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

[괴담]구전설화:삼년고개

옛날 어느 산골마을에는 삼년고개라 불리던 고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번 넘어지면 일 년도 아니고 이 년도 아닌 단 삼 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전설이 내려져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갈 때마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다녔습니다.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나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삼년고개를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조심조심 고개를 올랐지만 풀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여우를 보고 깜작 놀라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삼년고개에서 넘어졌으니 이제 삼 년 후면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이를 어쩌면 좋아, 아이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할아버지는 넘어져서 크게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앞으로 삼 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온종일 벌벌 떨었고 결국 병이 생기고야 ..

[괴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꽤나 오래된 이야기일세. 한 남자가 있었다네. 돈은 부족했지만, 가난하지 않았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밭 몇 뙈기가 있었고, 그걸 경작할 농기구도 있었고, 농작물을 잘 기를 기술도 있었어. 농촌의 평범한 사람이었네. 길을 걸어가면 하루에도 수십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네. 그는 아침이면 밭에서 밭을 갈았고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잠을 잤지. 그렇게 수 년을 밭에서 살았네. 조금은 진부한 도입부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밭에서 항아리를 하나 발견하게 되네. 항아리에는 한자가 새겨진 기이한 부적과 함께, 알지 못할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 온통 먹인지 흙탕물인지 모를 검은 무언가 범벅이기도 했지만 말일세. 그는 한자를 읽지 못해서 부적에 뭐라고 쓰여있는지는 몰랐지만, 항아리가 꽤나 무겁다는 ..

[괴담][무진기담]몽유무진

내가 나고 자란 무진을, 이제 떠나려 한다. 한 마디로 무진, 이라 해도 이런저런 곳이 있다. 저 산자락의 찾는 사람 적은 마을부터 저어기 남쪽의 도심, 거기서 다시 산 너머의 작은 포구에서 다시 배를 타고 나가는 섬 몇 개까지, 무진시는 지금껏 그 크기를 키워왔다. 내가 태어난 곳은 굳이 말하자면 무진의 바다라고는 조금도 안 보이는 산자락의 마을 쪽으로, 내가 태어나기 십 년 전쯤 무진시로 편입된 곳이다. 그 마을은 젊은 사람이 드문 농촌으로, 무진 시내까지는 비포장 도로인 탓도 있겠지만 차로 꼬박 30분 이상 걸리는 곳이었다. 마을 풍경은 누구나가 시골 마을 하면 떠올릴 풍경이었고, 다만 누가 무진 아니랄까봐, 매일 새벽 안개가 끼는 것만이 특이했다. 마을 중앙에는 큰 느티나무, 마을 입구에는 장승,..

[로어]로어모음_2

여섯 번째 이야기. 인도 타밀나두 주 마두라이 시의 외곽에 위치한 한 싱크홀은 현지인들에게 "돌아오는 구멍"이라 불리고 있다. 현지인들에게 이 싱크홀이 "돌아오는 구멍"이라 불리는 이유는 어떤 물건이든 이 싱크홀로 던져넣으면 다음날 아침에는 싱크홀 입구 옆에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1986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인도 정부의 조사 결과, 이 싱크홀의 깊이는 최소 0.8km이며 석회석이 지하수 및 빗물에 침식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 이상 무언가를 알아내는것은 실패했다고 한다. 이 싱크홀은 입구가 작은데다 여느 싱크홀보다 더 심한 호리병 모양의 구조를 갖고 있어 위험성 때문에 유인 탐사는 불가능하며, 싱크홀의 기저부는 거대한 지하 호수로 이루어져 있어 레이더 등으로도 정확한 깊이..

[로어]로어모음_1

첫번째 이야기. 스위스 취리히 주에 위치한 리마트 강 근처에는 아담한 크기의 저택이 있다고 한다. 오래되어 보이긴 하지만 전혀 특별한 것은 없어보이는 이 저택은 한 가지 특이한 현상으로 유명한데, 일년에 두 세번은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 전체가 크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물론 삐걱거리는 소리만 날 뿐, 저택은 흔들리지도 않을 뿐더러 지진활동이나 강풍, 폭우 등 저택이 흔들릴 만한 이유라곤 조금도 없다고 한다. 취리히 공과대학의 연구팀이 1978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이 저택을 조사하였으나, 소리의 근원이 이 저택이 확실하다는 것 외에는 소리의 이유나 원인은 밝혀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저택에서 나는 원인모를 소리에 대해 마을에서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그 전설에 따르면 ..

[괴담]두줄괴담_5

41. 발신인이 나인 이메일이 도착했다. 제목은 "지금 당장 도망쳐", 발신일은 30년 후의 오늘이었다. 42.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멈춘게 소리뿐만이 아니란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43. 게임을 하던 도중 마우스 선이 손목에 자꾸 걸리는게 신경쓰여서 결국 게임을 지고 말았다. 짜증을 내며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나서야 내가 무선 마우스를 쓰고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44. 오, 떨어졌다. 저 멀리 떨어져나간 내 팔을 보며 멍하니 그렇게 생각했다. 45. 산행 중에 목을 매고 죽은 사람을 발견했다. 한 가지 이상한건, 시체와 밧줄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지만 그림자는 그대로 밧줄 그림자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46. 엄청 무서웠는데 아프던 몸도 멀쩡해졌고, 기분도 정말 상쾌..

[괴담]두줄괴담_4

31. "야옹~. 야옹~." 새벽 두시에 저 꼬마는 내 방 창가에서 왜 저러는걸까. 32. 옷걸이에 걸어둔 모자가 떨어지는걸 봤다. 그리고 옷걸이가 그 모자를 주워서 다시 제자리에 거는것도 봤다. 33. 십수년간의 탐험 끝에, 나는 모든게 금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 도시가 모든게 금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라 모든걸 금으로 만드는 도시란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34. "쐐애애액ㅡ 쿵!!!" 벚꽃잎이 떨어지는걸 보니 또 다시 봄이 왔나 보다. 35. 세 시간째 사냥터에서 사냥중인데 뭔가 이상하다. 이렇게나 오래 사냥을 했는데 왜 레벨업이 안되고 똑같이 힘든거지? 36. 길거리에서 발을 밟혔지만 정중하게 사과하기에 사과를 받아주었다. 호모 사피엔스 종은 예의 바른 개체들도 ..

[괴담]두줄괴담_3

21. 혼자 앉아있을때 등이 가려운데 손이 닿질 않는것보다 더 끔찍한게 뭔줄 알아? 누군가의 손이 거길 긁어주는거야. 22. 비행중인 비행기의 두 날개가 굉음과 함께 모두 부서졌을때 승객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승객들이 더 무서워했던건 부서진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고 무려 20분을 더 날았었다는 점이다. 23. 아파트의 비상계단에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올라가기에 한쪽으로 길을 비켜줬어. 3분쯤 뒤에 그 사람이 떨어지는걸 창문으로 볼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24. 방 안이 너무 어두운데다 정전까지 되어있었기에 형은 라이터를 꺼내서 켰다고 한다. 나보고 항상 멍청하다더니, 내가 가스관에 구멍을 내 놓은건 꿈에도 몰랐을거다. 25. 그녀는 옛날부터 인형을 좋아했다. 좋아하던 인형이 되었으니 지금은 더 ..

[괴담]두줄괴담_2

11. 의자를 빼두고 자면 귀신이 앉는다는건 순 거짓말이다. 귀신은 그림자가 없다는데 저건 있잖아. 12. 하늘이 흐려졌을때는 덥기도 했고 비가 오는것도 좋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곧 하늘에서 잉크같은 검은비가 쏟아지자 생각이 바뀌었지만. 13. 어두운 밤에 날 따라오는 소리가 들리는게 무서운것이 아니다. 그 소리를 아무리 들어봐도 발자국 소리는 절대 아니라는게 무서울 뿐이지. 14. 먹구름 중간에 난 구멍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을때 난 공포에 질릴 수 밖에 없었다. 하늘이 보이기 직전에... 난 분명 커다란 이빨을 봤다고. 15. 뭘 보는거야? 내 시체는 이미 다 탔고 나도 이제 떠날거니까 그만들 봐. 16. 마취와 마비의 차이점은 결국 의식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난 아무래도 마비된 채 수술실로 끌려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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