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24 12:29
뭔가에 씌이거나, 노려지거나, 누가 따라오거나 하면
진짜 좆된다는 걸 가장 먼저 얘기해 둔다.
그리고 내 경험담으로 말하자면
한 번이나 두 번 제령 받은 거 가지고 어떻게든 해결되는 경우는 일단 없음.
긴 시간에 걸쳐 천천히 침식되니까 제령을 못한다는 경우가 많다고 해.
내 경우는 거의 2년 반 쯤.
일단 먼저 말해두자면 몸도 다 괜찮고 보통 사람처럼 생활할 수 있어.
하지만 유감스럽지만 끝났는지는 알 수 없어.
일단은 처음부터 적을게.
당시 나는 23살,
회사원 1년차라서 새로운 생활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때였어.
회사가 작아서 당연히 동기도 몇 명 없었어.
그러니 필연적으로 사이가 좋아지지.
그 동기 중에 도호쿠지방 출신인 ○○라는 놈이 있었는데
이 녀석이 또 여러가지를 알고 있고, 엄청 아는 사람이 많고 그랬단 말이야.
그래서, 흔히 [이걸 하면 ××게 된다.], [△△가 온다] 이런 얘기 있잖아?
그런 얘기는 거의 구라라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는 진짜로 그렇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있다고 해.
그놈이 말하길 뭔가 조건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게 우연히 모일 경우 일어나는 게 아닐까 그러더라고.
내 경우에는 뭐, 장난삼아 한 게 원인이지만.
당시 나는 차를 산지 얼 마 안 되었던 때였고 혼자 살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됐었어.
무엇보다 알바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월급이 들어와서 주말에는 미친 듯이 놀았어.
8월 초 쯤, 꼬셔서 친해진 애들과 ○○, 그리고 나 총 4명이서
이른바 심령스팟이라는 장소에 담력체험을 하러 갔어.
그 장소는 확실히 무서웠고, 한기도 들었고, 뭐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뭐, 스릴을 만끽하고 돌아갔어.
거기 갔다가 3일 후에 있었던 일이야.
당시 회사는 상사가 돌아가 때까지 신입은 돌아갈 수 없다는 암묵의 룰이 있어서
매일 늦게 퇴근하게 됐어.
지쳐서 집에 돌아 온 후,
정말 지금 떠올려도 이해를 못하겠는데
방 입구에 있는 전신거울 앞에서
[해선 안 되는 짓]
을 했어.
시험해볼까, 이런 생각한 것도 아니고
그냥 문득 떠올랐던 것 같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할게.
당시 우리 집은 역에서 걸어서 15분, 4평 정도 되는 원룸이었어.
현관에서 들어오면 좁은 복도가 있고 그 앞에 4평짜리 방이 있어.
전신거울은 방의 입구, 즉 복도와 방의 경계에 놓여 있어.
내가 ○○에게 들었던 건 이런 얘기였어.
[거울 앞에서 △를 한 채 오른쪽을 보면 ◆가 온다.]
자세는, 약간 인사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 돼.
올 리가 없잖아,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인사를 한 채로 오른쪽을 본 그때였어.
방 한가운데쯤에 뭔가 있었어.
겉모습은 명백하게 이상했어.
아마 160센티 정도 됐던 것 같아.
머리는 산발에 허리까지 내려왔었고, 발을 내린 것처럼 얼굴에 덮어져 있었어.
아니, 얼굴에는 부적 같은 게 몇 장이나 붙어 있었기 때문에 안 보였어.
이름이 뭔진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흰 옷을 입고 있었고 작은 폭으로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어.
그걸 본 나는...굳어버렸어.
목소리도 안 나왔고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지만
머리 속은 엄청난 회전수로 돌아가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
상상해 봐.
좁은 원룸에, 소리도 없는 방 한 가운데 쯤에 뭔가 있다는 상태를.
머리 속에서는 원인을 확실하게 아는데,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어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어.
죄우지간 정상이 아니잖아?
불은 켜져 있는데, 오히려 그게 무서운 거야.
갑자기 튀어나온 그놈이 보이니까.
그놈 주변만 좀 푸르스름하게 보였어.
시간이 멈추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조용했어.
일단 내가 낸 결론은 이거였어.
[방에서 나가자.]
바로 옆에 있는 구두를 나는 어째선지 천천히, 신중하게 들었어.
그놈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눈을 떼면 좆될 거라고 느꼈으니까.
슬그머니 복도의 반 쯤 (그냥 걸어가면 세 걸음 정도이지만 상당히 시간이 걸렸어)을 지난 부근에서
몸을 좌우로 움직이던 그놈 움직임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어.
그와 동시에 뭔가 신음 소리 같은 걸 내기 시작했어.
그 후 어떻게 됐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안 나.
정신을 차리니 역 앞 편의점에 들어와 있었어.
2009/11/26 23:58
어쨌든 사람이 있는 편의점에 도착해서 안심했어.
하지만 머리 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워서
[뭐였던 거야 그거.]
이런 분노와 비슷한 감정과
[문 안 잠갔는데.]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침착한 내가 있었어.
결국 그날은 집에 돌아갈 용기가 없어서
밤새도록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어.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두려움에 떨며 방문을 열었어.
다행이다.
사라졌어.
방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밖에 나가서 캔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웠어.
실은 아무것도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
진짜로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날이 밝기도 했고 이미 놈이 사라졌기 때문에 좀 여유가 생겼던 거야.
그래서 아까보다는 조금 대담하게 방에 들어갔어.
[좋아,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커튼이 쳐져 있었기 때문에 어스름한 방에 불을 켰어.
그러자 어젯밤의 사건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어.
어제, 그놈이 있었던 곳 주변 바닥에 엄청난 냄새를 풍기는 진흙(아마 진흙이라고 추정)이,
그것도 발자국 레벨을 넘은 양이 남아 있었어.
일어난 일을 사실로 재인식하기까지, 시간은 그리 걸리지 않았어.
팟, 하고 깨닫고 더욱 패닉 상태가 됐는데
...나, 불 안 껐었어...하하.
스위치를 켠 왼손을 보니, 스위치에도 진흙이 묻어 있었어.
잠시 동안 흐리멍텅한 기분에 휩싸였지만,
나가버린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뭐, 이런 게 AB형인 내 전형적인 점인데
그런 상태에서도 진흙을 청소하고 샤워를 하고 출근했어.
냄새가 없어지질 않아서 존나 열받았는데
이건 이거대로 큰 문제지만 회사를 쉬는 것도 중대사였으니 말이야.
회사에 도착하자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어떻게든 ○○와 얘기할 시간을 노렸어.
사건의 발단에 관련된 ○○한테서 어떻게든 정보를 얻기 위해서.
점심시간이 되자 드디어 얘기를 하는데 성공했어.
아래에 쓴 게 나랑 ○○의 대화야.
나[전에 얘기했던『△하면 ◆가 온다』라는 얘기 있었잖아,
어제 그거 했는데 왔어.]
○[뭐? 뭔소리래?]
나[그러니까, 진짜 뭔가가 나왔다니까!]
○[아~네네, 쿠퍼액이 나오셨구나.]
나[야, 웃기지 마, 위험한 게 나왔다고.]
○[뭔 소린지 모르겠어!]
나[나도 모른다고!!]
안되겠다, 끝이 안 나.
○○를 믿게 만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차례대로 어제 일어난 일을 설명했어.
처음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도
드디어 반신반의하는 상태가 됐어.
그래서 일이 끝나고 내 방에 가서 확인하기로 했어.
밤 10시, 다행히 빨리 회사에서 나올 수 있었던 ○○와 나는 집에 도착했어.
문을 연 순간 오늘 아침 맡은 악취가 코를 찔렀어.
꽉 닫아둔 방의 열기와 함께, 정말 냄새가 덤벼 들었어.
돌아가는 길에도 집요할 정도로 설명을 나에게 들은 ○○는 한마디 중얼거렸어.
[....진짜야?]
믿은 것 같아.
문제는 ○○가 어떠한 해결책을 내줄지였는데,
소망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일단 제령을 받는 편이 좋다는 것과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놈은 도망치듯 돌아갔어.
예상대로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었지만
나는 놈의 마당발에 기대를 걸었어.
냄새나는 곳에 있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그날은 캡슐 호텔에서 묵었어.
오늘 밤에도 그게 나오면 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게 본심이야.
다음 날, 일단 근처 절에 갔어.
솔직히 회사가 중요한 상황이 아니잖아.
스님께 얘기를 하니,
[전문이 아니라서 모르겠어요~얼마간 쉬면 어떨까요, 분명 기분탓일겁니다.]
이런 태평스러운 대답이 돌아왔어.
더러운 세상.
그날은 도시에서 유명한 절과 신사를 몇 곳 돌아다녔지만 전부 별반 차이가 없었어.
지쳐버린 나는 사이타마에 있는 친가에 내려갔어.
정확히는 외할머니가 신세를 지고 있는 S선생이라는 여승에게 상담을 하고 싶었어.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사람 말고 제대로 내 얘기를 들어줄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뿐이야.
여기서 S선생이라는 인물을 소개할게.
어머니는 나가사키 현 출신으로 당연히 할머니도 나가사키에 있어.
할머니는 전쟁 경험으로 인해 신실한 불교신자였어.
S선생은 그 할머니가 1주일에 한 번 가는 자택 겸 절의 주지스님이었어.
나도 몇 번 정도 만난 적이 있었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교파의 이름은 교과서에 오를 정도였으니
사이비나 영능력자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제대로 된 부처님을 모시는 분이야.
인품은 온후하고 침착하고 상냥한 말투야.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쯤 아버지가 땅을 사고 집을 세우게 됐었거든.
그때 지진제라고 하나? 아무튼 그 땅에 제령을 받았어.
지진제를 하고 1주일 후,
나가사키에 사는 할머니한테서 땅이 좋지 않으니 S선생님이 제령하러 간다는 전화가 왔었어.
당연히 어머님은 벌써 했는데 왜 하냐고 했대.
그러자 할머니가 이랬다는 거야.
「그래도 S선생이 아직 남아있다고 하싰다.」
즉, 내가 아는 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 게 S선생이었어.
날도 저물기 시작해,
사이타마의 친가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쯤에는
밤 9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어.
도내와는 달리 공장밖에 없는 마을이라서 밤 9시밖에 안돼도 인기척은 없어.
버스 정류장에서 친가까지 약 20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걸었어.
인기척이 없는 어두운 길을 가로등이 규칙적으로 나란히 서 있었어.
내심 그저께 일이 플래시백 되기 시작해서 꽤 두려웠는데
다행히도 그놈은 나타나지 않았어.
근데 밤이 돼서 쌀쌀해진 탓일까, 나는 내 몸의 이변에 눈치를 챘어.
아무리 생각해도 목 아래 부근이 뜨거워.
이해가 잘 안될지도 모르지만,
예를 들자면 목에 끈이 감겨서 좌우로 끌리고 있는 듯한 느낌.
목에 손을 대보고 한기가 들었어.
뜨거워.
목만 뜨거워.
게다가 따끔거리기 시작하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발진 같은 게 셍긴 느낌이 들었어.
걷고만 있을 수 없게 친가까지 전속력으로 달렸어.
숨을 헐떡이며 친가의 현관을 열자 어머니가 마침 전화를 끊는 참이었어.
그리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어.
[아, 너. 나가사키의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걱정이래.
S선생님이 네가 안 좋은 일을 겪고 있으니 이쪽으로 오라고 하셨대.
너 무슨 일 저지른 거야?
어머 세상에, 너 목 주변이 왜 그래?!]
어머니께 대답하기 전에 현관 거울을 봤어.
그놈이 올지도 모른단 생각은 안 했었지....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자 목 주변 아랫부분에 꼭 밧줄이라 감겨져 있는 것처럼 훌륭한 빨간 선이 나 있었어.
가까이서 보니까 옅은 발진이 선명하게 생긴 상태라 아무리 나라도 작게 몸이 떨렸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어머니에게도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어머니 방에 있는 작은 불상 앞에서 계속 나무아비타불을 외웠어.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내가 걱정된 아버지가 왜 그러냐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어.
어머니는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어.
울고 계셨어.
도망칠 곳은 없다고,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고,
이 때 겨우 이해했어....
친가로 내려가, 내가 놓여진 상황을 이해하고 3일이 지났어.
정신적으로 내몰린 탓인지,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놈이 날 그렇게 만든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2일간 고열이 나서 고생했어.
목에서 이상할 정도로 땀이 나더니 2일째 낮에는 피가 맺히기 시작했어.
3일째 아침에는 목에서 피가 멎기 시작했어.
원래 맺힌 정도였으니까.
열도 미열 정도까지 내려가서, 조금은 진정됐어.
그런데 목 주변이 이상하게 간지러웠어.
따끔따끔하고 아프면서 가려워.
베개나 이불, 타올 같은 게 닿으면 옅게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졌어.
피가 났었으니까 딱지가 생겨서 아픈 거라 생각하고 일부러 만지지 않도록 했어.
이불 속에 들어가서 해질녘까지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화장실에 갔을 때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거울을 봤어.
거울 같은 건 보고 싶지도 않은데,
나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던 거야.
거울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을 비추고 있었어.
목에 생긴 불그스름한 건 완전히 나았어.
그 대신 발진이 커진 상태였어.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나쁘지만
굳이 세세한 묘사를 하게 해줘.
기분 나빠하진 말아 줘.
원래 목을 두르고 있던 선의 두께는 1cm 정도였어.
그게 새빨갛게 변했고 원래 꽤 흰 피부인 내 피부랑 대비되어서
꼭 빨간 끈이 감겨 있는 것처럼 보였어.
이게 3일 전 일이야.
눈 앞에 있는 거울에 보이는 나한테는 고름이 고여 있었어.
....아니, 정확하진 않네.
정확하게는 빨간 선을 만들던 발진에는 고름이 고여 있었고
꼭 존나 큰 여드름이 드글거리는 것 같았어.
그 대부분에 고름이 고여 있었고
너무나도 역겹고 기분이 나빠서 그 자리에서 토했어.
깨끗한 물로 목을 씻고 어머니께 연고를 빌려 그걸 바르고 울면서 이불로 돌아갔어.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오직,
[왜 나인거야.]
이 분노 뿐이었어.
울다 지쳤을 쯤 휴대폰이 울렸어.
○○한테서 온 전화였어.
이럴 땐 정말 사소한 거라도
희망이란 건 엄청난 에너지가 되더라.
솔직히, 이렇게 기쁜 전화는 지금까지 없었어.
나[여보세요.]
○「오오~괜찮아?!」
나[아니..괜찮을 리가 없잖아...]
○「아-역시 위험해?」
나[위험한 정도가 아니라고, 하아...근데 뭐라도 정보는 없어?]
○「응, 현지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말이야~ 아는 놈이 없어서...미안하다.」
나[아-, 그래서?]
솔직히 ○○ 나름대로 여러가지를 알아봐 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당시의 나는 상대를 배려할 여유 같은 건 없었으니까,
상당히 자기 중심적인 말투로 들리겠지.
○「아니, 그 대신, 친구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종류에 강한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소개해줄 수 있다는데, 돈이 필요하대...」
나[!?돈 받는 거야?]
○「응, 그런 거 같아...어떡할래?」
나[얼마나 드는데?]
○「아는 사람 얘기로는, 일단은 50만 정도라고 해...」
나[50만~?!]
*50만엔 : 한화로 약 500만원
당시 나에게 있어서 일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50만이라니 낼 수 있을 리가 없는 금액이었어.
돈이 없었지만 공포와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선택지는 없었어.
나[..알았어. 언제 소개 해줄래?]
○「그 사람, 지금 군마에 있대,
아는 사람에게 물어 볼 테니까,
조금 기다려봐.」
2009/11/29 19:57
얘기가 좀 과거로 돌아가는데
내가 불상 앞에서 나무아비타불을 반복해서 외우고 있었을 때
어머니는 할머니께 전화를 걸고 계셨고
얘기를 들은 할머니는 바로 S선생님께 상담을 받으러 갔어.
(상담이라기보단 도와달라고 부탁하러 갔다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S선생님이 와 주시기로 했어.
그런데 S선생님도 바쁘시고, 무엇보다도 고령이야.
이쪽에 오는 건 3주 후로 정해졌어.
즉 그 3주간은 불안과, 공포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을 겪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어.
그런 상황이니 조금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어.
○○가 밤 11시 넘었을 쯤 다시 전화를 했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아는 사람에게 얘기를 하니 연락을 해 줘서, 내일 가 준대.」
나[내일?]
○○「거야, 내일 일요일이잖아?」
그렇구나, 어느새 그것을 보고 5일이 지났구나.
신기하게도 회사 일은 까먹고 있었어.
나[알았어. 고마워, 우리집까지 와 주는 거야?]
○○「집까지 간대, 차 타고 간다니까 주소를 메일로 보내 줘.」
나[넌 어떡할 거야? 와 줬음 하는데.]
○○「갈게 갈게」
나[돈, 나중에 내도 되려나?]
○○「아마 괜찮지 않을까?」
나[알았어. 근처에 도착하면 전화해.]
그날 밤, 꿈을 꿨어.
자고 있는 내 옆에 흰 일본 전통 복장을 입은 젊은 여자가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어.
내가 눈치를 채자 *미츠유비를 하고 깊숙이 고개를 숙인 후 방에서 나갔어.
방에서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깊숙이 머리를 숙였어.
이 꿈이 그놈이랑 관련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미츠유비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짚고 공손히 절을 하는 일본 에절
다음 날, 낮에 ○○한테서 연락이 와서 전화로 유도를 한 뒤 마중을 나갔어.
온 사람은 ○○랑 걔 친구.
그리고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왔어.
일반인처럼은 안 보였어.
양아치 같은 느낌이 들고, 무슨 일을 하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어.
내가 제대로 설명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의아해 하셨어.
일단 틀림없이 가명이라고 생각되지만 남자는 하야시라고 자신을 소개했어.
하야시 [T군의 이야기는 친구분께 들었어요. 정말 귀찮게 되었네요.]
(이제와서 얘기해서 미안하지만 T라는 건 나,
대화 중에 나오는 친구분이라는 건 ○○라고 생각하고 읽어줘)
아버지[그래서, 하야시 씨는 무슨 관련으로 오신 겁니까?]
하야시[아니 그게, 이건 이젠 초보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겁니다.
아버님, 아시겠어요? 믿기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T군, 위험하다구요?
그래서 ○○가 친구인 T군이 위험하니 도와 달라고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어머니[T는 위험한 건가요?]
하야시[아니 그게 말이죠, 저도 꽤나 이런 걸 겪었지만 이렇게 심한 건 처음 봅니다.
이 방 가득 나쁜 기운이 충만해 있어요.]
아버지[...실례합니다만, 하야시씨의 직업을 여쭈어봐도 되곘습니까?]
하야시[아~신경 쓰입니까? 뭐, 거야 갑자기 와서 이런 얘기를 하면 수상하게 보이겠지요.
그래도 말입니다, 제대로 제령을 하고 주변을 정화하지 않으면,
T군은 정말로 끌려 가버립니다?]
어머니[저, 하야시씨께 부탁 드려도 되나요?]
하야시[거야 뭐, 맡겨주신다면야. 이런 건 저 같은 전문가가 아니면 안되니 말이지요.
단지 말입니다 어머님, 저도 리스크가 있으니 말이죠.
조금 쥐어주시지 않으면, 좀 그렇지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아버지[얼마를 내면 됩니까?]
하야시[그렇네요~뭐 *200은 받아야...]
(200만엔, 한국돈으로 약 2천만원)
아버지[엄청 비싸구만?!]
하야시[지금도 ○○가 친구를 도와달라고 하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러 온 거라고요?
싫으시다면, 전 별로 상관없으니까요~
그래도 겨우 2백만으로 T군을 살릴 수 있다면 싼 편이라고 생각됩니다만.]
하야시[게다가, T군도 절에 갔지만 상대도 해주지 않았잖아요?
이런 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라고요. 다시 처음부터 찾아 다닐 겁니까?]
나는 입을 다물고 듣고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200만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을 쳐다봤는데
○○도 곤란한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
결국 아버지도 어머니도 알 수 없는 일에 그 이상 의견을 말할 수 있을 리도 없고
할 수 없이 맡기기로 했어.
하야시는 바로 그날 밤 제령을 하겠다고 했어.
준비를 한다고 하면서 한 번 밖을 나갔어.
(나가면서 부모님께 준비에 드는 돈을 받아 갔어.)
해질녘이 되어 돌아와선 양초를 세우고 부적 같은 종이를 온 방안에 붙이고
무릎 옆에 수정 구슬을 놓고 염주를 쥐고,
일본주라고 추정되는 술을 잔에 따랐어.
그러자 뭔가 그럴싸해지더라.
하야시[T군, 지금부터 제령을 할 테니까. 이걸로 이제 괜찮을 테니까.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만 일단 집에서 나가 주시겠습니까?
어쩌면 령이 두 분께 붙을 수도 있으니.]
부모님은 부득이하게 밖에 있는 차 안에서 대기를 하게 됐고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두워졌을 쯤 제령이 시작됐어.
하야시는 불경 같은 걸 외우면서 일정한 타이밍으로 잔에 손가락을 넣고
내게 손가락에 묻은 술을 뿌렸어.
제령이 시작되고 시간이 상당히 지났어.
그러자 불경을 외우는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리기 시작했어.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 나쁜 분위기와
조금씩 이상해져 가는 불경만이 내가 알 수 있는 전부였어.
처음엔 눈치를 못 챘는데 목이 이상하게 아프더라.
가려움을 넘어서서 확실하게 아픔이 느껴졌어.
눈을 뜨지 않기 위해 아픔을 토하듯 이를 꽉 물고 있자, 불경이 멈췄어.
그런데 이상해.
잘 모르겠지만 불경이 애매한 부분에서 끝난 것처럼 느껴졌고
끝났는데도 아무런 말도 걸지를 않았어.
무엇보다도 목의 아픔은 전혀 사라지지를 않고 오히려 심해지는 거야.
한기도 느껴지고, 무언가가 이불 위로 올라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눈을 뜨면 안 돼.
그것만은 절대 해선 안 돼.
알고는 있었지만.....
뜨고 말았어.
눈을 뜨자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어.
하야시는 이불에 누워 있는 내 오른손 쪽에 앉아서 불경을 외우고 있었는데
하야시와 마주 보는 것처럼 날 사이에 두고 그놈이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어.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상반신만 쭉 늘여 하야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하야시의 얼굴과 그놈 얼굴 사이의 간격은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 밖에 안 됐어.
신기하단 듯이 얼굴을 비스듬히 하고는
올빼미마냥 미세하게 얼굴을 움직이고
알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면서
하야시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하야시한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하야시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아래로 둔 채 눈도 깜빡이지 않았고
입은 칠칠치 못하게 벌린 채 침을 흘리고 있었어.
조금 얼굴이 웃은 것처럼 보였어.
이따금 작게 끄덕였어.
나는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응시하고 있었어.
그러자 갑자기 그놈 목 움직임을 멈췄어.
그리고 그 다음,
그 얼굴이 내 쪽을 봤어.
나는 서둘러 눈을 꽉 감고 이불을 덮어쓴 채 계속 나무아비타불을 외웠어.
내 얼굴 바로 앞에서 그놈이 올빼미먀냥 얼굴을 움직이고 있는 광경이 눈꺼풀 위에 떠올랐어.
무서웠어.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어.
하야시가 도망친 것 같았어.
나는 너무 무서워서 계속 이불 속에 있었어.
부모님이 오시고 불을 켜고 이불을 들추었을 때,
이불 속에는 둥그렇게 몸이 굳은 내가 있었다고 해.
하야시는 부모님을 쳐다도 안 보고 차에 뛰어들어,
기다리고 있던 ○○와 ○○의 친구와 함께 어디론가로 사라졌어.
나중에 ○○에게 들은 얘기론
[출발해]
라는 말만 계속 했다고 해.
해결이 되긴 커녕 더욱 더 나쁜 상황이 되어버린 나에겐
3주 후에 오실 S선생님을 기다릴 여유 따윈 남아있지 않았어.
2009/12/05 11:03
놈을 다시 마주하고 4일이 지났어.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만 목은 상당히 좋아졌어.
아직 멍은 남아있었지만 확실히 체력은 회복됐어.
열도 내려갔고 이젠 몸에는 문제가 없었어.
하지만 그건 신체적인 얘기만 해당될 뿐,
나는 아침이고 밤이고 상관없이 두려움에 떨었어.
언제 어디에서 그놈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계속되어, 밥도 거의 먹지 못하고 언제나 주변 기척을 살피고 있었어.
겨우 10일 만에 내 얼굴은 상당히 변해버린 것 같아.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내겐 더 이상 시간이 없었어.
당연히 정상적인 회사 생활 같은 건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부모님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해서 회사를 그만뒀어.
(이것도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연락을 했을 때 꽤 빈정댔다더라)
아무튼 모든 게 무서워서, 빨랫감이나 집 창문에서 보이는 나뭇가지가 흔들린 것만으로도
어쩌면 그놈이 온 게 아닐까, 하며 혼자 두려워했어.
S선생님이 오시기까진, 아직 2주 정도가 남은 상황이고
나에겐 너무 긴 시간이었어.
날 가엾게 여긴 부모님은 강제로 두려움에 떠는 나를 차에 밀어 넣고 어디론가로 향했어.
[걱정 하지마.]
[괜찮아.]
아버지가 몇 번씩이나 나한테 말을 걸어 주셨어.
차 뒷좌석에서 어머니는 내 어깨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셨어.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게 몇 년 만인지.
(당시 나에게는) 시간 감각도 없어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밤을 맞이했어.
20살도 넘어 가지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머니께 바짝 붙어 있어서 안심한 건지 오랜만에 깊게 잠이 들었어.
눈을 뜨니 이미 해는 떠 있었고 오랜만에 자서 개운했어.
실제로는 꼬박 하루 반을 잤다고 해.
아마 그렇게 오래 자는 일은 앞으론 없겠지.
밖을 내다보니 차는 본 적 없는 경치 속으로 나아가고 있었어.
그리고 조금씩, 익숙한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도로 중앙을 전철이 달리고 있어.
차는...나가사키에 도착한 상황이었어.
이걸 깨닫고 아무리 나라도 놀랐어.
계속 두려워하는 나를 염려하여,
비행기나 *신칸센은 피하고 차를 타고 이동을 해 준거야.
*신칸센 : KTX같은 거
도중에 몇 번이나 쉬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차를 계속 운전하신 아버지와
내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계속 곁에 붙어 있어 준 어머니의 마음은
평생을 다해도 갚을 길이 없을 거야.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곳은 나가사키에 있는 야나가와라는 곳이야.
야나가와에 도착하자 언덕길 아래에 차를 세워 두고 부모님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르러 갔어.
(할머니 할아버지 집은 언덕길 바로 옆으로 들어가 돌계단을 올라가야 있어.)
그 사이, 나는 차 안에서 혼자 방치 됐어.
부모님이 두 분 다 나간 이유는 다리와 허리가 안 좋은 할머니와
S선생님의 집에서 가져올 짐을 옮기는 걸 돕기 위해서였다는데
[괜찮다, 다녀와.]
내가 이렇게 말한 건 정말로 그놈을 얕보고 있었다는 증거인 것 같아.
오랜만에 자기도 했고 지금 있는 곳이 도쿄, 사이타마랑 꽤나 떨어진 나가사키이기 떄문에
마음이 누그러진 걸지도 몰라.
차 뒷좌석에 무릎을 끌어안는 식으로 앉아서 멍하니 밖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에서 아픔이 느껴졌어.
지금까지 느꼈던 아픔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부풀려서 말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격통이 느껴졌어.
목에 손을 대보니까 미끌거렸어.
....피가 흐르고 있었어.
손가락에 묻은 피가 나를 억지로 다시 현실로 끌고 왔어.
이 때 무섭다던가,
그놈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또냐...]
이런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감정이 먼저 느껴졌어.
이젠 뭔가 다 지긋지긋해져서 눈물이 났어.
이 기분이 어떤지 느껴지면 좋겠지만
나쁜 일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계속 일어나면
이젠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우울해지지.
마음의 정리가 되려고 하면 또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건 괴롭잖아.
이때는 조금 마음이 누그러져 있었으니까 더욱 그랬어.
[어떻게 하란 거야 대체!!!]
[제발 좀 그만해.]
나는 이런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울고 있었어.
부모님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데리고 차로 돌아왔는데 바로 날 보고 패닉에 빠지셨어.
거야 그 당사자인 내가 목에서 피를 흘리면서 뒷좌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으니.
아무 일도 없었을 리가 없지.
[무슨 일이야?]
[뭐라고 말 좀 해!]
[세상에 어떡해!]
[T쨩, 정신 똑바로 안 차리나!!]
[왜 그카는데?!]
[여보, 어떡하지.]
이 때는...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
[니들 다 시끄럽다고!!!!]
이런 상황에서 설명 같은 게 가능할 리 없잖아,
니들은 아무 것도 못하는 주제에....닥치고 있어!
이런 생각을 했어.
멋대로 나쁜 일을 당하고 회사는 그만두고 사기도 당할 뻔 하고...
이런 나 같은 쓰레기 자식을 위해서 노력해준 사람들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부끄러워.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면,
살면서 딱 한 번 뿐인데,
아버지가 갑자기 내 왼쪽 뺨을 때렸어.
엄청나게 아팠어.
아버지는 장난 아니게 엄해서 몇 번이고 엄청 격하게 말싸움은 한 적이 있었지만
아마 태어나서 한 번도 맞아 본 적은 없었을 거야.
(아버지의 방침으로, 아이를 절대 때리지 않는다는 건 옛날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었었어.)
날 때리시고 아버지는 딱 한 마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사과해.]
조용하지만 격한 어조로 말씀하셨어.
그걸로 어째선지 진정이 됐다기 보다는 너무 깜짝 놀라서
그 때까지 느껴졌던 절망감이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어.
진정하고 가족들한테 사과를 하자 갑자기 배짱이 생긴 기분이 들었어.
달리기 시작한 차 안에서,
날 격려해준 할머니 할아버지 말에 엄청 감동을 받고 또 울었어.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마음이 약했어 나는.
S선생님의 집 (절이기도 한)에 도착하자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 졌어.
무슨 일이 일어났다기 보다는 내가 멋대로 안심했다는 게 맞을 거야.
문을 지나고 징검돌이 깔린 좁은 길을 벗어나자 초로의 남성이 우리를 맞이해 줬어.
그러고 보니 S선생님의 집에는 언제나 손님이 계셨던 것 같아.
분명 할머니처럼 이곳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겠지.
안으로 들어가서 뒤쪽 현관으로 들어가니 5평쯤 되어 보이는 *불간이 있었어.
*불간 : 불상이나 위폐를 모신 방
S선생님은 내 기억대로 불상 앞에 놓여있는 방석 위에 정좌를 하고 앉아 계셨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셨어.
할머니[T쨩, 이제 괘안타. S선생님이 봐주실 끼다.]
S선생님[오랜만이구나, 벌써 이렇게 늠름하게 자랐구나. 세월이 빠르네.]
할머니[S선생님, T쨩은 괜찮을까요?]
할아버지[괜찮겠냐니, 방금 도착했는데 S선생님이라도 잘 모르신다카이.]
할머니[당신은 조용히 있그라. 참말로 내는 너무 걱정이 돼가.]
왜일까....
그저 S선생님의 앞에 오기만 했는데
지금까지 불안해 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정을 되찾으셨어.
그건 부모님에게도 내게도 전해져서
깊게 숨을 내쉬자 몸 안에서 나쁜 게 빠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부모님도 이젠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다다르셨나봐.
[피곤하지? 이 뒤는 S선생님이 잘 해주실 끼다. 옆 방에 가 쉬어라.]
붙임성 있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부모님은 옆 방으로 갔어.
S선생님 [그럼 T쨩, 이쪽에 오렴.]
S선생님께 불려서 선생님을 마주 보며 정좌를 하고 앉았어.
S선생 [그럼 여러분도 옆 방에 가서 쉬세요. T쨩과 얘기를 나누고 싶으니까.
뒤는 내게 맡기고, 이쪽 방에는 다 됐다고 할 때까지 들어 오면 안 됩니다?]
할아버지[S선생님, T쨩을 잘 부탁드립니다!]
할머니 [T쨩, 걱정 말그라. S선생님께서 잘 봐주실끼다.
니는 선생님 말 잘 듣기만 하모 되는기다, 알겠나?]
거듭 S선생님께 부탁을 하고 내게 격려를 해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에 또 눈물이 흘렀어.
완전 울보네 나.
S선생님께 가까이 오라는 말을 듣고 무릎과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가 앉았어.
선생님은 내 손을 쥐고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어.
나는 어째선지 나쁜 일을 저지르고 혼나지 않을까, 하고 부모님의 눈치를 보던
어릴 적 같은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어.
눈 앞에, 일부러 적겠는데 나보다도 작고 확실히 힘도 없는 할머니의,
압도적이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은 그 분위기에 말려들고 있었어.
이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싶더라.
S선생님 [...어떻게 할까.]
나[...]
S선생님[T쨩, 무섭니?]
나[..네.]
S선생님[그렇겠지, 이 상태로 계속 지낼 수도 없으니까.]
나[어...]
S선생님[아, 괜찮아. 혼잣말이니까.]
뭐가 괜찮아?! 전혀 안 괜찮다고,
이런 감정이 넘쳐 흘러서 참지 못하고 결국 터져 버렸어.
정말 인간으로서 미숙해. 나는.
나[저기, 전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진짜 빨리 어떻게 좀 해주세요.
대체 뭡니까? 왜 그놈은 내게 붙어 다니는 겁니까?
진짜 제발 좀 그만해줬으면 좋겠어요.
S선생님, 어떻게든 안 되는 겁니까?]
S선생님[T쨔...]
나[애초에, 나는 딱히 나쁜 짓도 안 했다고요?!
확실히 □□(심령 스팟 거기)에는 갔지만,
나만 간 것도 아니고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 겁니까?!
거울 앞에서 △를 하면 안 된다는 거도 관련이 있는 겁니까?
진짜 왜 이 지랄인지 모르겠네!! 아!! 씨발 빡쳐!!!]
「어어~어어으우재서」
「어어~어어으우」
「츠애쨋서」
…이게 뭔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갔어.(진짜로 뭔 지랄인지 몰라서 일단 그대로 적음)
「어어~. 쨋서 어어~쨋서」
왼쪽 귀에 앵무새나 잉꼬 같은 높은 톤에
억양이 없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그게 [어째서]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고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어.
나는 S선생님의 눈을 보고 있었고, S선생님은 내 눈을 보고 있었어.
그런데 상냥하던 S선생님의 얼굴이 무표정으로 바뀐 것처럼 보였어....
왼쪽 시야에 뭔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
슬쩍슬쩍 보게 되니까.
안 그러면 좋았을 텐데, 왼쪽을 보고 말았어.
목에서 뜨뜻미지근한 피가 흐르는 걸 느끼면서.
그놈이 서 있었어.
몸을 く 이런 모양으로 숙이고 내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었어.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정할 수가 없었어.
여긴 절인데, 눈 앞에는 S선생님이 계신데...
왜....
왜, 왜....
1주일 전에 본 그대로였어.
그놈 얼굴이 눈 앞에 있었어.
올빼미마냥 미세하게 얼굴을 움직이면서,
날 신기하다는 듯 들여다보고 있었어.
[어엇째서? 어엇째서? 어엇째서? 어엇째서?]
앵무새 같은 목소리로 계속 질문을 했어.
분명...하야시도 나처럼 이 목소리를 들은 거겠지.
나한테 한 거랑 똑같은 말을 속삭인 건진 모르겠지만...
숨 쉬는 걸 잊고, 눈과 입을 크게 벌린 채 굳어있었어.
아니,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게 더 맞으려나.
이따금 [코흇] 이런 식으로 숨을 들이마시는 걸 실패했던 것 같으니까.
그러는 동안 그놈이 손을 움직여서 얼굴에 붙어 있는 부적 같은 걸 천천히 떼기 시작했어.
보면 안 돼!! 절대 안 된다고 알고 있었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는 거야!!
이미 턱 부근이 보이려고 하는 정도까지 와 있었어.
마음 속으로는 [그만 둬!!그 이상 떼지 마!!!] 이렇게 소리를 치고 있는데
입에서는 [아..아카핫.....] 이런 한심한 숨소리 밖에 나오질 않았어.
진짜 위험해!! 좆됐다! 망했어! 싶었던 그 순간.
[쾅!!]
하고.
예를 든 것도 아니고,
과장을 한 것도 아니야.
펄쩍 뛰어 올랐어.
심장이 파열되는 줄 알았어.
2009/12/15 01:20
「쾅!!」
그 소리에 난 펄쩍 튀어 올랐어.
정좌로 앉아 있었으니 넘어질 뻔 하면서도 뒤돌아 바로 달려나갔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게 아니라, 몸이 멋대로 움직인 거야.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정좌로 앉아 있었던 탓에 다리가 저려서 제대로 달릴 수가 없는 거야.
저린 다리가 꼬이고 너무 앞을 안 보고 있던 탓에 머리를 벽에 박았지만 하나도 안 아팠어.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렀는데...
그 정도로 당황해서 주변이 안 보였다는 거지.
피가 눈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안 보여서 손을 마구 휘저으며 출구를 찾았어.
하지만 이상한데만 찾고 있었던 것 같아.
S선생님 [아직 안 됩니다!!]
갑자기 S선생님이 크게 소리를 지르셨어.
장지문 너머에 있는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말을 한 건지, 나한테 한 건지는 알 수 없었어.
알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내 움직임을 멈추게 하기엔 충분했어.
움찔하면서 그 자리에서 경직.
그리고 또 머리를 엄청나게 굴리면서 지금 일어난 일을 파악하려고 했어.
솔직히 파악 같은 게 될 리도 없고, S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랐던 것 뿐이지만.
내 움직임이 멈추고 불간에 들어오려고 하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움직임이 멈춘 걸 확인하듯,
조금 간격을 둔 후 S선생님이 말씀하셨어.
S선생님 [T쨩 미안해, 무서웠지. 이제 괜찮으니 이리로 돌아와.
I씨, 괜찮으니까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장지문(후스마였을지도) 저편에서 계속 무슨 말을 하는 게 들렸는데 기억이 안 나.
피를 훔치며 S선생님의 앞으로 돌아가자 손수건을 빌려 주셨어.
향냄새일지도 모르지만, 좋은 냄새 났었는데.
이 때가 되어 겨우, 그 소리는 S선생님이 손으로 낸 소리였다고 깨달았어.
(질문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지만)
S선생님 [T쨩, 보였지? 들렸지?]
나 [보였어요...어째서?라고 반복하고 있었어요.]
이 때는 이미 S선생님은 평소랑 다름없는 상냥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어.
나도 이번엔 천천히, 최대한 진정하고 대답을 하는 거에만 집중했어.
뭐....생각하는 걸 포기한 거지만.
S선생님 [그렇네, 어째서? 라고 들렸었지, 뭐라고 생각해?]
전혀 이해가 안 갔어.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나 [??....아니...음?...모르겠어요.]
S선생님 [T쨩은 아까 그거 무서워?]
나 [무섭...습니다.]
S선생님 [뭐가 무서운데?]
나 [아니...그게 평범하지 않잖아요, 유령이고...]
이쯤에서 내 뇌는 사고 능력의 한계를 넘어섰었어.
S선생님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전혀 짐작이 안 갔어.
S선생님 [그치만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니잖아?]
나 [아니...목에서 피 났고,
게다가 무슨 부적 같은 걸 두르고 있었고,
아무리 봐도 평범한 게 아니고...]
S선생님 [그렇지, 그렇지만 그것 말고는 없었잖니.]
나 [...]
S선생님 [어렵지.]
나 [저, 잘 모르겠어요...죄송해요.]
S선생님 [괜찮아.]
S선생님은 나도 이해할 수 있도록 얘기를 해주셨어.
타일러주었다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
먼저, 그놈은 유령도 귀신이라고 부르는 존재인 건 틀림없대.
그럼 그놈이 소위 악령이라고 불리는 존재냐고 묻는다면,
그리 단언해도 되지만 S선생님은 어렵다고 말씀하셨어.
확실하게 질이 나쁜 부류에 들어가지만
S선생님은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셨어.
내게 일어난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땐 이렇게 대답해주셨어.
S선생님 [악의는 없어도 너무 강한 존재면 이렇게 되어버려.
그 사람은 계속 외로웠던 거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만지고 싶다,
자기를 쳐다봐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있다는 걸 눈치채 줘,
눈치채 줘.』
이렇게 계속 바랐던 거야.
T쨩은 말이야, 본인은 모를 수도 있지만 따뜻해.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분명 『좋다~착해 보인다~』이렇게 생각한 거겠지.
그래서 자기 존재를 알아채 준 게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던 게 아닐까.
하지만 T쨩은 그 사람과 비교하면 너무 약해.
그래서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져서 몸이 반응하고 마는 거야.]
S선생님은 마치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 듯
천천히,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며 말씀해주셨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었어.
그것은 분명 악령 아니면 질 나쁜 존재라고 단정 짓고 있었으니까.
S선생님께 제령을 받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S선생님이 그놈을 감싸듯이 말씀을 하시니...
S선생님 [자, 그럼 이번엔 어떻게든 해야겠지.
T쨩, 시간이 걸리지만, 어떻게든 해 줄 테니까.]
이 한마디에 정말 구원 받았어.
아아, 이제 괜찮은 거구나.
끝났다고 생각했어.
드디어 안심한 거야.
S선생님이 가르쳐 준 걸 적을게.
나에게 있어서는 평생 잊고 싶지 않은 말이야.
S선생님 [겉모습이 무서워도,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네 자신처럼 괴로워 하고 있다고 생각하렴.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렴.]
S선생님은 불경을 외우기 시작했어.
제령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놈이 성불할 수 있도록.
그날 밤, 이마는 찢어졌고 자세히 보니 목에 있던 자국은 크게 찢어져서 아팠지만
정말로 편히 잠들 수 있었어.
(불경이 끝나고도 좀처럼 안정을 취하지 못하는 날 위해서
웃으며 그날은 거기서 묵게 해주셨어.)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S선생님은 이미 아침 기도를 끝내고 계셨어.
S선생님 [잘 잤니, T쨩.
자,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오렴.
다 먹으면 본산(本山)으로 갈 거니까.]
관계자도 뭐도 아니기에 다 적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조금만 적을게.
S선생님이 속하고 계신 교파는,
전에도 적은대로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역사가 깊어서,
신자도, 수행자도, 일본 전국에서 온다고 해.
가르침은 똑같은데, 지리적인 문제로 동쪽과 서쪽 각각에 본산이 있대.
내가 따라 간 곳은 서쪽 본산이야.
본산에 잠시 신세를 지면서
내가 원래 지니고 있는 덕(徳) (지금도 어떤 건진 알 수 없지만)을 높이고
조금이라도 빨리 그것이 성불할 수 있도록
본산에서 공양을 드리기 위해서 가는 거라고 S선생님은 말씀하셨어.
그 얘기를 듣고 가장 기뻐하신 건 할머니였어.
아직 믿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게 아버지.
마지막에 내가
[이제 괜찮아, 다녀올게.]
이렇게 말해서 반대는 하지 않으셨지만.
본산에 도착하니 젊은 사람이 마중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S선생님께 정중히 인사를 했어.
본당 옆 안쪽에 있는 작은 방(작은 방이라고 해도 꺼려질 정도로 넓고 훌륭했지만)에서
본산에 계신 분들에게 인사를 드렸어.
이 때도 모두들 S선생님에겐 꽤나 저자세였어.
S선생님은 사실은 엄청난 사람이라서
자신이 원했다면 상당히 높은 지위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나중에 들었어.
([쓸쓸하지만, 서열이 세워져 버려.]
S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
나는 본산에 잠시 동안 신세를 지며,
뭐 손님처럼 대해주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을 했어.
아마 S선생님이 말씀해 두셨던 거겠지.
거기서 지내면서 나는 내가 정말 행운아라고 실감했어.
벌써 40년 간 계속 뱀 귀신 때문에 괴로워 하고 있는 여성이나,
가족, 친척한테까지 재앙이 내려 혼자가 되어 버렸지만,
집안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굉장한 무사 가문 후예인 사람이나...
나 같은 놈보다 훨씬 괴로워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괴로운 생활을 해서 그런지, 있던 곳이 그런 곳이었기 때문인지,
아님 S선생님의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공포는 많이 옅어졌어.
(이렇게 말을 해도 문득 순간적으로 그놈이 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상당히 두려워 했지만)
본산에서 지내면서 1개월이 지났을 쯤 S선생님이 오셨어.
S선생님 [어머어머, 꽤나 좋아진 것 같구나.]
나 [네, S선생님 덕분입니다.]
S선생님 [그 후로 보이거나 했어?]
나 [아뇨...한 번도요, 아마 성불한 건지 어디로 가 버린 게 아닐까요? 여긴 본산이니.]
S선생님 [그럴 리는 없는데?]
내 얼굴이 굳었어.
S선생님 [어머, 미안해. 또 무서워 지지. 그래도 말이야 T쨩,
여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잔뜩 있어.
그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많이 구해주는 게, 우리들의 사명이야.]
아마도, S선생님의 말에는 그놈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아.
S선생님 [T쨩, 좀 더 이곳에서 공부를 하렴. 모처럼 왔으니 말이야.]
나는 S선생님이 말을 따랐어.
그 때의 일이 아직 걱정돼서 좀 더 여기 있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말이야.
그리고 하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데....
뭐라고 해야하나, 시간 자체는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어.
(뭔가 말이 모순되어 있지만 말이야.)
그렇게 지내다 보니 결국 3개월이나 거기서 지냈어.
그동안 S선생님은 이곳에는 오시지 않았어.(2개월 전에 오시고 나서)
역시 S선생님의 말씀이 없으니 불안했어.
근데 슬프다고 해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3개월이나 그동안 내가 지내던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격리되니까
뭔가 부족하다는 감정이 강해졌어.
실로 2개월만에 S선생님이 오셔서 드디어 본산에서의 생활이 끝을 맞이하려고 했어.
몸 단장을 하고, 여하튼 신세를 진 분들을 한분씩 만나서 감사를 표하고,
S선생님과 돌아가려고 했어.
그런데 정신을 차리니 옆에 있었을 터인 S선생님이 안 계셨어.
어? 하고 돌아보니 선생님은 내 조금 뒤에 계셨어.
너무 빨리 걸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니까
선생님은 상냥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어.
[T쨩, 돌아가지 말고 여기 있으면 어때?]
실은 S선생님께 인정을 받은 기분이 들어서 조금 기뻤어.
[아뇨, 저는 여기 있는 분들처럼 살 수는 없어요.
정말로 다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흉내조차 낼 수 없어요.]
쑥스러워하며 내가 대답하니까
S선생님 [아니 그게 아니라, 돌아가면 안 되는 것 같아.]
나 [네?]
S선생님 [왜냐면 아직 남아있으니까.]
내 얼굴은 또 굳었어.
결국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나서야 본산에서 하산할 수 있었어.
장장 5개월 동안이나 거기서 눌러 살고 말았어.
아마 이렇게 오랫동안 가족도 아닌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일은 앞으로 없겠지.
S선생님께는 이런 말을 들었어.
[아마 이젠 괜찮을 거 같은데 얼마 동안은 한 달에 한 번 오렴.]
그놈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숨어버린 건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고 하셨어.
길고 길었던 본산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드디어 일상으로 돌아왔어.
빌린 아파트는 어머니께서 퇴거 수순을 끝내주셔서 친가에 내 짐이 있었어.
아파트 방문을 연 순간 뭔가 그을린 것 같은 냄새랑
방 중앙 부분 바닥에 작은 벌레가 모여 있었대.
너무 무서워서 그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오셨대.
다음 날, 어쩔 수 없으니 결심을 하고 다시 방문을 열자
냄새는 남아있었지만 벌레는 사라져 있었대.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내가 안 봐서 다행이다.
친가로 돌아와서 실로 약 반 년만에 휴대폰을 살펴보니
(그러고 보니 이 때까지는 신경도 안 쓰였었어.)
전화랑 메일 엄청나게 와 있었어.
그 중에 가장 많았던 게 ○○.
메일에는 걔는 걔 나름대로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자책하고 있었는지
사죄랑 이렇게 하면 좋다던가, 이런 사람을 찾았다던가,
자주 연락을 한 게 적혀 있었어.
어머니께 ○○이 집까지 왔었단 얘기도 들었어.
집에 돌아온 지 2일째 되는 밤.
○○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 너머가 시끄러웠어.
○○는 혀를 꼬며 말해서 무슨 소릴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
....술 처먹고 놀고 있었어.
일단은 전화를 끊고,
『죽여버린다.』
라고 메일을 보내뒀어.
어차피 이 세상에서 남은 남이야.
다음 날 ○○한테서 메일이 왔어.
『사과를 하고 싶으니 시간을 내 주지 않을래?』
전화가 아니었던 건, 좀 그래서 그런 거겠지.
밤이 되자 집까지 ○○가 찾아왔어.
일부러 먼 곳에서 올 정도니 상당히 후회와 반성을 한 거겠지.
(밤에 나가는 걸 내가 싫어한 게 가장 큰 이유란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
현관을 열고 ○○를 보자마자 두 대 날려줬어.
한 방째는 그놈이 자책하는 걸 그만두게 하고 싶어서,
두 방째는 술 처먹고 놀아서 날 짜증나게 만든 것에 대한 속죄.
말로 용서하는 것보다 맞는 게 더 후련한 경우도 있지.
뭐, 두 방째는 내 개인적인 분노였지만.
○○한테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날 밤은 둘이서 흥분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상이었지.
○○한테서는 그날 밤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어.
그날 밤, 도망쳤을 때는 하야시는 분명 이상해져 있었대.
하야시 차 안에서 친구랑 기다리던 ○○는,
일단 틀림없이 위험한 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바로 알아챘대.
하지만 뒷좌석으로 뛰어온 하야시가 조급해 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차를 출발 시킬 수밖에 없었대.
[반항을 하거나 망설였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었어.]
○○의 말이 그 당시 상황을 느끼게 해줬어.
○○는 차가 우리 집에서 멀어져 고속도로 입구의 신호 때문에 멈췄을 때 도망쳤다고 해.
[그도 그럴게 그 새끼, 도중부터 웃기 시작하다가, 떨다가,
『난 아니야』
이러고
『그런 짓 안 할 거예요』
이런 말을 지껄이기 시작해서 무섭더라고.]
그놈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이 다시 떠올라서
머릿속 그 영상을 지우는데 고생했어.
우리 집에 돌아오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게 너무 무서워서였대.
[근성도 없는 놈이라서 미안해.]
이렇게 사과를 했으니 용서해줬어.
내가 ○○였다고 해도 그랬을 거야.
그 후 하야시가 어떻게 되었는진 아무도 모른대.
아무리 그래도 이번 일에 대해선 ○○도 화가 나서,
하야시를 소개해 준 친구에게 따졌다고 해.
결국 하야시는 사기꾼 축에도 못 끼는 개 쓰레기 놈이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놈이 꼬드겨서 별생각 없이(용돈 벌이였었대...) 소개한 거래.
○○ 왈
[제대로 패줬으니까 용서해줘!]
그래도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자신의 정보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이번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맥을 총동원했지만...
이런 일에 끼어들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 놈이 주변에 있을 리가 없고
아마, ~겠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정보밖에 없었다고 해.
그래서,
[무슨 조건이 몇 개 있는데,
그게 우연히 갖추어져서 일어난 게 아닐까.]
이렇게 밖에 말을 할 수가 없었대.
그 후 나는 S선생님이 말씀하신 걸 지키며 매달 1번 S선생님을 찾아갔어.
처음 1년은 매달, 다음 해는 3개월에 1번.
○○도 나한테 사과를 한 후에는 아무 일이 없어도 집까지 오는 날이 많아졌고
S선생님이 계신 곳에 가기 전과 돌아왔을 때는 반드시 연락이 왔어.
그놈을 보고 2년이 지났을 즘.
S선생님께 이 말을 들을 수가 있었어.
[이제 걱정할 거 없어 T쨩. 이젠 가끔만 오면 돼.
그래도, 이상한 짓을 하면 안 된다.]
정말로 끝난 건가...나는 알 수가 없지.
S선생님은 그로부터 3개월 후, 타계하셨어.
경애하는 S선생님께 좀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어.
그저 지금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싶어.
S선생님의 장례식이 끝나고 2개월이 지났어.
외로움과,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도 옅어지기 시작하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어.
어수선한 매일, 순간순간 문득 그때 일을 떠올릴 때가 있어.
너무나도 일상과는 동떨어진 일이라,
정말로 일어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는 그런 때가 있어.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또 할 필요도 없고,
그저 매일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야.
그 너무도 당연한 일상을 보내던 중,
할머니께서 보낸 편지 한 통이 도착했어.
봉투를 잘라보니 할머니의 편지랑 다른 편지가 또 한 통 나왔어.
할머니의 편지에는 나를 사랑하는 내용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어.
『S선생님에게 받은 편지야.
*49제도 끝났으니, S선생님의 약속대로 T쨩에게 보낼게.』
*49제 :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매 7일째마다 7회에 걸쳐서 49일 동안 개최하는 기도의식.
S선생님의 편지.
지금은 거기 적힌 내용의 진상을 확인할 수도 없고,
그대로 적는 것도 꺼려지니까 대충 적을게.
T쨩에게
오랜만이구나. S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꽤나 지났네.
지금은 괜찮니? 무서워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나이가 들면 빙 둘러서 말하게 돼서 안 되겠네 참.
오늘은 말이야, T쨩에게 사과를 하고 싶어서 편지를 적었단다.
하지만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야.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그치만...미안하구나.
그날, T쨩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선생님은 정말로 무서웠단다.
그도 그럴게 T쨩이 데리고 온 존재는
도저히 선생님이 감당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T쨩 두려워하고 있었잖니?
그래서 선생님이 더 무섭게 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무리 손을 뻗어도 전혀 쳐다도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단다.
그때는, 운이 좋았어.
T쨩, 본산에서 지내던 생활은 어땠니?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였으려나?
T쨩을 만날 때마다 선생님이 아직은 안 된다고 했잖니? 기억하고 있니?
이대로 돌아가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T쨩처럼 젊은 애에겐 지루할 거라고 알면서도 돌아가라고 할 수가 없었어.
선생님은 매일 기도를 드렸는데 좀처럼 다른 곳으로 떠나주질 않아서.
그렇지만, 이제 괜찮을 터야.
근처에서는 없어진 것 같으니 말이야.
하지만 T쨩, 만약...만약 또 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면,
바로 본산으로 가렴.
그곳이라면 아마 T쨩이 더 강해져서, 좀처럼 손을 댈 수 없을 거야.
마지막으로, 꼭 알려줘야만 할 게 있단다.
너무도 괴로워진다면 부처님께 네 몸을 맡기렴.
더는 괴로운 일밖에 남지 않게 된다면 결심을 하거라.
결코 T쨩이 죽었으면 하는 게 아니란다.
그래도 말이다, 만약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T쨩에게 있어선 괴로운 시간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뜻이란다.
T쨩은 본산에서 몇 명이나 만난 적이 있지?
정말로 나쁜 존재는 말이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괴롭힌단다.
절대 끝내주지 않는 거야.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비웃고 싶은 거야.
분하지만, 선생님들의 힘이 부족해서,
눈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경우가 있어.
그 사람들도 구해주고 싶지만....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경우가 많아서....
선생님은 어떻게든 T쨩만은 구해주고 싶어서 노력을 했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어.
기척은 느껴지지 않으니, 사라졌을 것 같긴 하지만 아직 안심하면 안 돼.
안심하고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알겠지? T쨩.
결코 안심을 하면 안 된다.
언제나 경계하고, 수상한 곳에는 가지 말고, 이상한 짓을 하면 안 된다.
선생님을 믿어, 알았지?
거짓말만 쳐서 미안하구나.
믿어 달라고 하는 게 너무 이기적이라는 건 알고 있어.
그래도, 끝까지 부처님께 기도 드렸다는 건 믿어주렴.
T쨩이 강건하게 매일매일을 보낼 수 있도록,
언제나 기도할게요.
S
편지를 읽으면서 편지를 들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기분 나쁜 땀도 흘렀어.
고동은 계속해서 빨라졌어.
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아직...끝나지 않은 거야?
갑자기 그놈이 어디선가에서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이젠 도망칠 수 없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저 숨어있던 것 뿐이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내 눈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이젠 어쩔 도리가 없어.
모든 것이 의심스럽게 여겨졌어.
S선생님은 어쩌면 그놈한테 당한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 편지를 남기신 게 아닐까?
결국...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게 아닐까?
하야시는, 어쩌면 그놈한테 씌어버린 게 아닐까?
대체 그놈이 뭐라고 속삭인 거야.
나랑은 다르게, 좀 더 직접적인 말을 들어서....
이상해 진 거 아닐까?
S선생님은,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해주셨지만,
『거짓말을 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던 건가....
결국 그걸 알고 계셨으니
S선생님은 마지막까지 걱정을 하신 게 아닐까?
의심을 하면 할수록 혼란스러워져.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혀 모르겠어.
내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야....
2년 반에 걸쳐 지금도 끝났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전부야.
결국 이유도 알 수 없고 운 좋게 해결이 되거나,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거나 하는 일은 없었어.
어디에서 들은 지도 모르는 지식이 불러온 건지,
아니면, 그게 뭔가 인과관계가 있었던 건가...
나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우연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어.
하지만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지독하게 괴로워.
대체 이렇게까지 괴로워야 하는 죄를 저질렀나? 저지르지 않았잖아?
그렇다면...대체 왜?
너무 불공평하잖아.
이게 내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이야.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여기까지야.
[뭔가에 씌이거나 노려지거나, 따라다닌다면,
정말로 그냥 지낼 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얘기할게.
마지막까지, 누군가가 끝났다고 해도, 안심하면 안 돼.]
그리고....
마지막까지 와서 미안하지만 내가 사과해야만 하는 게 있어.
이 얘기 안에 작은 거짓말이 몇 가지 있어.
이건 다소 이해하기 쉽도록 한 거기도 하고,
내가 알 수 없는 것도 있었기 때문에 친 거짓말이니까 봐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잘 이해가 안 갔던 부분도 많았을 것 같아.
전부 다 사과할게.
그런데...사과를 하고 싶은 건 그 부분이 아니야.
좀 더,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부분에 관련된, 근본적인 부분에 나는 거짓말을 쳤어.
눈치는 못 챘을 것 같고,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모순되게 느끼는 부분도 있겠지.
실망하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이 이야기를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했어.
나는 ○○야.
.....이제 와서 후회해도,
내 후회는 끝나질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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