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TERY/Napolitan

[나폴리탄]<청소부원을 모집합니다.>

MI_TE 2023. 3. 13.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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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분명 채용 공고에서는 청소 용역을 구한다...고..."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아뇨, 그... 생각했던 장소랑 좀 달라서..."

 

 

마치 벙커와도 같은 입구 앞. 이 문 앞까지 오기까지 수많은 계단을 내려왔다. 

남성이 멋들어지게 관리된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생긋 웃는다. 남자의 이마에 맺혀있던 땀방울이 그의 손바닥에 쓸려 내려간다.

뭐라고 할까. 웃음에 조금 가식적인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겠지. 밖의 그 땡볕 아래에서 날 기다리며 가만히 서 계셨었으니...

 

 

"괜찮습니다. 보다시피, 이 사이 통로를 청소해 주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의 말을 듣고 반쯤 열려있는 문 사이로 내부를 살펴보니, 정말 그 말 대로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 그야말로, 감옥과 같지만 감옥과는 다르다.

양 좌우로 늘어진 철창들. 우리라고 불러도 될까. 그 안이 휑하니 비어있다는 것도 위화감에 한몫을 하고 있지만 감옥과 다르다는 거는 이 이유 때문이 아니다.

철창에 입구가 없다. 이 점이 계속 내가 위화감을 느끼는 원인이리라.

 

 

"분명, 신청 요건에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이라는 조건을 붙였지만 혹시 몰라 다시 여쭙겠습니다. 혹시 어두운 곳을 싫어하시나요?"

 

"아뇨. 애초부터 저희 집에서 불을 켜고 있는 시간이 적을 정도입니다. 밝은 곳 보다 어두운 곳이 좋아요."

 

"그건 다행이군요."

 

"그런데, 이곳은 아무리 봐도 너무 밝은걸요? 어째서 어두운 곳을 싫어하면 안되는 건가요?"

 

 

그럴만한 이유가, 확실히 여기서 육안으로 봐도 복도는 아주 길게 쭉 뻗어 있지만 그 모든 공간에서 밝은 조명이 어둠따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맹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런 곳은 오히려 집돌이와 같던 내게는 어둠보다 불편한 공간인데. 어째서 어둠을 싫어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까?

 

 

"아... 청소를 하시면서 아시겠지만, 아무래도 이곳이 지하인데다가 입구가 여기 한 곳 뿐이라서요. 오래 전에 한번 전등이 나갔었는데 하필 그 당시의 담당 청소부께서 어두운 곳을 너무 무서워하시던 분이셨던지라... 패닉에 빠지셔서 그만 규칙을 어기시고 말았거든요."

 

"규칙....이요?"

 

"아, 서두가 너무 길어졌나 보네요. 우선적으로 규칙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렸어야만 했는데... 죄송합니다."

 

 

갑자기 꾸벅 상체를 숙이는 남성에게 나는 당황하며 그를 말린다.

 

 

"아, 아휴, 아닙니다. 괜찮아요."

 

 

남성이 고개를 들며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다시 앞머리를 정리한다.

 

그런데 규칙이라니, 고작 복도 청소를 할 뿐인데...?

 

잠시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남성이 머리 정리가 끝난 것인지 다시 말을 꺼낸다.

 

 

"자, 그럼. 이걸 받으시지요."

 

 

그러면서, 뒷주머니에 꽂아둔 작은 수첩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딱딱하다. 수첩의 표지는 매우 딱딱한데다가 두께가 5mm에 육박한 수준이다. 재질은... 이런 철에 대한 지식은 없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최소 스테인리스가 아닐까. 이 정도면 솔직히 말해 흉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뒷면을 보니, 자그마한 펜이 표지에 딱 맞게 들어가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수첩의 첫 페이지를 열어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청소부 직원분들을 위한 청소 안내서 ]

 

 

왜 이렇게 거창한 걸까.

수기가 아닌, 깔끔하게 프린트된 글씨가 날 반겼다.

심지어, 종이도 코팅처리가 되어있는 모양인지 반들반들한 촉감이 내 손가락을 스친다. 아마 날이 잘 드는 가위나 칼을 가지고 자르지 않는 이상 찢기도 힘들어 보인다.

 

 

"천천히 읽어보시고,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자유롭게 질문해주세요."

 

 

그 말을 듣고 첫 장을 넘겨보았다.

여전히, 멋들어지게 인쇄되어있는 글씨들이 날 반겼다.

 

 

 


 

서두

이 책자의 내용은 반드시 숙지하여 주십시오.

해당 책자에는 마이크로칩이 삽입되어있어, 허가 없는 반출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서든 책자의 손상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청소를 진행하는 동안, 반드시 해당 책자를 소지하여야만 합니다.

이하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을 시, 그에 대한 피해는 오로지 본인 몫임을 명심하십시오.

 

 

 

규칙 제 1번.

 

철창에 외부적인 손상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십시오. 보기와는 다르게 철창의 강도는 매우 약해져 있습니다. 만일 철창을 건드는 경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피해와 수리비용은 오로지 본인 몫임을 명심하십시오.

 

 

 

규칙 제 2번.

 

이 곳의 청소는 오로지 바닥을 대걸레로 물걸레질을 하는 것 뿐입니다. 물 대야와 교체할 대걸레는 특정 구역마다 벽면에 세워진 캐비넷을 확인하여 보시면 됩니다. 만일, 캐비넷 안에 청소용구가 아닌 다른 무언가 가 존재한다면 해당 캐비넷은 반드시 창문이 달려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게 무엇이던 간에 조용히 캐비넷 문을 닫고 해당 캐비넷 상단에 적힌 일련번호를 함께 제공해드린 펜으로 수첩에 기입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규칙 제 3번.

 

간혹, 특정 구역에서 입구가 달려있는 철창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반드시 해당 철창의 위치를 기억하시고 그 주변을 지나다닐 때엔 빠르게 이동하셔야 합니다. 만일, 갑작스레 해당 철창의 문이 열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면 그 즉시 청소를 중단하고 최대한 빠르게 입구로 복귀하여야 합니다.

 

 

 

 

규칙 제 4번.

 

청소를 진행 중, 가끔 멀리 설치되어있는 전등이 깜빡이거나 아예 전원이 나가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켜져있는 전등의 바로 아래로 가서 대기하여 주십시오. 해당 복도의 전등들은 노후화 등의 원인으로 인해 가끔 전원이 꺼질 때가 있습니다. 만일 머리 위의 전등이 꺼지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모든 전등이 다시 켜질 때까지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규칙 제 5번.

 

항상 재빠르게 움직이십시오.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청소를 진행하게 된다면, 주변의 철창 내부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철창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당신이 일을 끝 맺을 시간이 다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부득이하게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무르다가 철창 내부가 어두워지는 현상을 보게 되었다면 그 즉시 그 구역을 탈출하고 입구로 돌아오십시오.

 

 

 

 

규칙 제 6번.

 

모든 청소부원들은 한번의 청소에 한명의 인원을 투입합니다. 또한, 해당 인원은 반드시 자신의 모든 소지품을 회수하고 복귀하여야 합니다. 청소를 진행하던 도중, 인기척이 느껴지거나 본인 소유의 소지품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물품을 발견하게 되면, 무시하시고 하시던 청소를 진행하십시오. 소지품의 분실은 해당 소유자의 잘못이며, 인기척은 단순한 기척 일 뿐입니다. 하물며, 대화할 상대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습니다. 입구는 단 하나이고, 복도도 단 하나라는 점을 명시하십시오.

 

 

 

 

규칙 제 7번.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침착하세요. 훌륭한 임기응변은 언제든지 도움이 될 겁니다. 침착하게 해결 방법을 떠올리고, 해결해 보도록 노력해 주세요.

 

 


 

 

 

"......"

 

"다 읽으셨습니까?"

 

 

좀... 찜찜한 내용들이 서술되어 있다. 내용에 청소에 관한 내용은 조금밖에 없지 않은가. 심지어, 뒷 장에 여백이 한참 남아있다.

이 종이 재질이라면 위에 연필은 물론이요, 볼펜으로 써도 잉크가 다 지워질 것 같은데 여백을 왜 남겨둔 걸까.

 

하지만, 이 장소엔 나 뿐이라고 하는데 위험한게 뭐 있겠냐 싶은 생각이 든다.

이만한 일을, 단 하루만 하고 거의 직장인의 월급 수준을 받아갈 수 있는 알바는 달리 없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다가, 기다리고 있는 남성에게 대답을 했다.

 

 

"음... 네. 다 읽었습니다."

 

"질문하실 내용이 있으신가요?"

 

"아뇨, 괜찮은 거 같아요."

 

 

앞의 남성이 처음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였다.

하긴, 이런 내용의 규칙을 읽고서 질문할게 없다고 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겠지. 나라도 놀랐을 거 같다.

 

 

"그럼, 이 문을 들어가시고 옆을 보시면 캐비넷 안에 청소도구와, 환복하실 청소복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물걸레질을 하셔야 하니, 환복하셔야 옷이 더러워지는걸 막으실 수 있을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뭘까. 이 우대받는 느낌.

고작 청소 하나, 딱 하루 하는건데 청소 전용 복장까지 제공받을 줄은 몰랐다.

뭐, 해 준다니 고맙게 받도록 하자.

 

복장은 애초부터 본인의 옷 위에 입는 방식으로 제작된 건지 우비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었다.

장화를 신다 보니, 청소복 모든 부위에 번호가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7번이라... 하긴, 이래야 청소복을 가지고 나가는 놈들을 확실히 잡아낼 수 있겠지.

이정도의 청소복이면 솔직히 태풍이 불 때 밖으로 나가도 옷에 물 한 방울 안들어 갈 수 있을테니 충분히 그럴 법 하다.

 

환복이 완료되고 나서,  대걸레와 물통을 들고 다시금 뒤를 돌아보았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 있던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아, 혹시 몰라 입구는 열어두겠습니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제가 항상 이곳에 대기하고 있을 예정이니 안심하여 주세요."

 

"아, 네.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럼 청소를 시작해도 될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허락을 받고 뒤를 돌아 복도를 들어가며 저 남성도 고생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다음에 또 오게 되면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 드려야지.

 

 

 

 


 

 

 

 

어느 정도 청소를 했을까.

문득 시간이 궁금해져 자연스레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아차, 나 지금 청소복을 입고 있지.

 

대걸레에서 손을 떼고, 청소복의 단추를 하나 하나 떼기 시작했다.

상의의 단추만 해도 10개가 넘고, 그 안으로 지퍼가 두개나 더 있다. 우주복이야 뭐야.

 

낑낑대며 상의의 지퍼까지 열고 나니, 시원한 바람이 청소복 안으로 밀려들어오며 땀으로 젖은 몸을 말려주었다.

후우. 한숨을 쉬며 다시금 주머니에 손을 넣어 폰을 꺼내들었다.

 

<오전 11시 59분. 통화권 밖.>

 

어라. 벌써 정오가 코앞이구나.

그 사실을 깨닫자, 괜스레 허기가 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자, 이미 입구는 저 멀리 작은 네모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앞을 돌아보니, 아예 보이지도 않던 맞은편 벽이 이젠 조그맣게 보인다.

 

도대체 얼마나 긴 거야 이곳은... 이러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 위의 전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다른 곳의 전등은 멀쩡하다. 오로지, 내 머리 위의 전등만 깜빡이고 있었다.

 

 

갑자기, 수첩의 내용이 떠올랐다.

 

<<<<<

규칙 제 4번.

 

청소를 진행 중, 가끔 멀리 설치되어있는 전등이 깜빡이거나 아예 전원이 나가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켜져있는 전등의 바로 아래로 가서 대기하여 주십시오. 해당 복도의 전등들은 노후화 등의 원인으로 인해 가끔 전원이 꺼질 때가 있습니다. 만일 머리 위의 전등이 나가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모든 전등이 다시 켜질 때까지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

 

.... 미신, 이라고 생각한다.

뭐, 세상에 별의별 종교가 다 있지 않은가. 이것도 그 연장선이겠지.

 

하지만, 이번엔 무려 고액의 알바비를 제공해주는 고용주의 규칙이다.

아무리 허무맹랑하더라도 지켜줘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차피 이쪽 라인 청소는 했으니 다음 전등의 아래로 가기로 결심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다.

다음 전등 아래로 이동하니, 이전까지 깜빡이던 전등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내 머리 위의 전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규칙에도 없었는데. 하며 가볍게 고민을 했다.

 

 

그리고, 이변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내가 서 있는 기준으로 앞, 뒤의 전등들이 갑작스레 꺼져갔다.

 

티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딕

 

나는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식간에, 내 머리 위에서 깜빡이는 전등을 제외한 모든 전원이 일제히 꺼졌다.

 

 

"뭐....뭐야....?"

 

 

갑자기 공포심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온다.

규칙에서 계속하여 강조하던 전등이 갑작스레 이상작동을 하고 있다.

분명 미신일텐데. 이성은 단순 미신이라고 하는데도 머릿속의 경종이 미친듯이 위험을 알리고 있다.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

문득 남성과의 대화 내용이 떠오른다.

 

'패닉에 빠지셔서 그만 규칙을 어기시고 말았거든요.'

 

그렇다. 패닉에 빠져 있을 필요는 없다.

애초에 익숙한 어둠이지 않은가. 전등이 꺼진 것 가지고 이렇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찬찬히 심호흡을 하며, 일단 주위 상황부터 파악했다.

 

내 위치는, 이 복도의 중앙 쯔음... 이라고 생각된다.

내 앞으로, 그리고 내 뒤로부터 입구까지. 내 머리 위의 전등을 제외한 모든 전등은 일제히 전력이 끊겼고 내 머리 위의 전등은 꺼질 듯 위태롭게 깜빡이고 있다.

 

입구..? 입구에는 그 사람이 대기하고 있을 터다.

 

일단, 크게 소리쳐 불러보기로 했다.

 

 

"아저씨!!! 내 말 들려요?!!!!"

 

 

조용하다.

입구에 누군가 서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서로의 말이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닐 텐데도 되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럼, 남은 건 뭐지?

 

옆을 돌아보자, 캐비닛 하나가 보인다.

 

캐비닛에 적힌 일련번호는, [2022-445]

445번째 캐비닛이라는 걸까. 그러고 보니, 444번째 캐비닛을 본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냥 넘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둘째치고, 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둘러본다.

 

유난히 더럽다는 점 빼곤, 이전과 다를게 없는 평범한 복도.

초조해져 덜덜 떠는 손을 진정시키고, 캐비닛으로 다가가 캐비닛의 내용물을 확인하려는 찰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만. 단지 전등이 꺼진것 뿐인데 왜 이렇게 떨고 있는거지?

그냥, 입구를 향해 걸어가면 되잖아.

 

 

그렇게 생각한 나는, 나는 어둠 속에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분명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마치 등 뒤에서 거대한 곰이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은 소름이 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장화까지 벗어버리고 전력으로 입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분명, 이곳은 청소를 해오며 지나온 길이다.

분명, 비어있는 걸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넘어왔다.

하지만, 어둠으로 가득 찬 지금은 아니다.

양 옆에서부터, 깊은 심연으로부터 긁어내는 듯 그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려온다.

그렇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였다.

 

어둠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철창에서 끼긱거리는 소리가 연신 내 다리를 부추긴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잠시 멈춰 한계까지 차오른 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깜빡이지만 밝은 전등 아래, 캐비닛에 적혀있는 일련번호가 무심하게 내 눈에 비친다.

 

 

[2122-445]

 

 

이 곳은, 와서는 안되는 공간이었다.

후회해도 너무 늦어버렸지만.

 

 

 


 

 

 

"아.... 처음으로 445번에 도달했는데. 여기까지였나 보네."

 

"그러니까 444번 캐비닛을 없애놓았다고 쉽게 해결될 거 같지는 않았다니깐요."

 

"흠... 그럼, 이번 현상의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어느 어두컴컴한 방.

아니, 어두컴컴 하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수 개의 모니터에서 새어나오는 빛에 의해 방 전체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모니터의 화면에는, 어느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스피커에서는,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벨소리와 같은 느낌으로 연신 소리가 울리고 있다.

 

'뭐, 뭐야....'

 

 

"잠시만. 다시 되돌려봐."

 

"네."

 

 

'뭐, 뭐야....'

 

 

모니터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성이 모니터를 째려보듯 바라본다.

앉아서 영상을 컨트롤하던 젊은 청년이 중년 남성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중년 남성은 가만히 서 있다가, 뒤를 보고 누군가를 불렀다.

 

호출되어 온 남성은, 앞머리를 멋지게 관리한 남성.

오면서도 내내 앞머리를 정리한 것인지, 이젠 광택이 나는 정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 그 피험자가 들어갈때 분명히 청소복을 완벽하게 착용하고 작업을 들어갔지?"

 

"네. 제가 입는걸 도와줬으니, 그 부분은 확실합니다."

 

"그런가. 그럼, 다음 알바생에겐 싸구려 손목 시계라도 달아줘야겠네."

 

 

중년 남성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적어도 이전 녀석처럼 수첩을 들고 다니다가 저 멀리 던져버려서 목소리가 하나도 녹음되지 않던 것에 비해 낫기는 한데....

이전 녀석은 이상한 환각에 휩쓸려 그림자로 걸어 들어가 버리더니, 이번 녀석은 그냥 제 발로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버리네. 차라리 비밀서약서를 쓰게 하고 그림자를 조심하라고 써 놓아버릴까?"

 

 

그러자, 청년이 중년 남성에게 질문했다.

 

 

"그... 어차피 알바생 자체를 혼자 사는 청년만 뽑고 있잖아요. 굳이 이상현상을 기재하지 않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저놈들, 단 한번도 살아서 나온 적도 없거니와 중간에 그만두게 시키지도 않을거잖아요."

 

그러자 계속 문 앞에 서 있던 남성이 연신 정리하던 앞머리를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며 청년에게 말했다.

 

"5번 피험자였던가. 패닉에 빠져서는 제자리에 엎드려 그림자에 빨려들어가기 직전까지 연신 경찰에 신고하다가 한번 연결되어 버려서 수습하느라 엄청 고생했었습니다. 만약 또 그런 일이 생기고 만일 경찰과 통화가 되어 내용을 술술 불어버리면 큰일이 생기겠지요."

 

중년 남성과 함께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고, 청년이 그렇구나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중년 남성은 담배 한 개비를 뽑아 입에 물려고 하다가, 다시금 모니터에 뜬 한 남성의 모습을 보고 청년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어이, 항목 하나 새로 추가해.

 

 

 

규칙  7번으로.

 

청소 중 청소복의 탈의를 금지한다, 고 말이야. 이전 7번은 8번으로 옮기고. 일단, 현상이 생기지 않는 쪽으로 정리를 하고 나서 이미 발생한 현상에 대한 대처 방법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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