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TERY

[괴담][무진기담] 짙은 안개

MI_TE 2023. 2. 14. 09:39

집 안에는 내가 서있었고,

문 밖에는 짙은 안개만이 떠다녔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누군가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때문에 문을 열었지만, 문 밖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그저 짙은 안개만 끼어있을 뿐이었다. 나는 모처럼 짙은 안개가 낀 날이라 마을 아이들이 장난을 친 것이라 생각하고 별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분명히 들렸다. 다급한 듯이 강하게 여러번 내리치는 소리가 말이다. 나는 바로 달려가서 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2시간 전의 일 때문인지 짙은 안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한 기시감이 느껴져 잠시 머뭇거렸다. 잠깐의 고민끝에 나는 문 손잡이를 빠르게 돌려 문을 열었고, 문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문을 다 열기도 전에, 그 사람은 순식간에 증발하듯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내 인생에서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심호흡을 한 번하고 문을 닫으려던 그순간, 바닥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문 앞까지 걸어온 발자국과 다시 돌아간 발자국이 수없이 많이 찍혀있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내가 지금 안개에 홀린건가? 나는 다시 돌아가서 하던 작업을 계속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발자국이, 이 짙은 안개가 날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밖으로 한발을 내딛었다. 나는 두려움이 들었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누구일까라는 궁금증도 생겼다. 그 궁금증을 못 이기고 몇 걸음을 더 가 완전히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는 다시 문 손잡이를 잡고 몇 번의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잠갔다. 나는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너머를 몇 초동안 처다본 뒤, 결심을 하고 안개 속으로 걸어갔다.

 

안개 속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심지어 흔하디 흔한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별난 일이었지만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않았다. 안개가 내 감각까지 가려버린 것 같았다. 그저 그렇게 안개를 계속 따라갔다.

 

몇 시간을 걷자 저 앞에 무진이라는 이름이 적힌 낡은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아왔지만 무진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껴 뒤를 돌아보았는데 뒤에 있던 길이 사라져있었다.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천천히 생각했다. 무진으로 향하는 길로 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길을 사라지게 하는데, 저 안으로 들어가면 나까지 안개가 되어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갑자기 무진으로 향하는 길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복통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고통에 나는 배를 끌어안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무진으로 향하는 길도 안개에 가로막힌 것이 보였다. 나는 안개로 둘러쌓인 섬에 갇힌 것이다. 안개가 점점 나를 조여왔고 그 때문에 내 몸도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 추위에 대항하려고 약하게나마 몸을 떨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 하늘은 내 편인가 보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생겼다. 나는 다른 것을 따질 시간없이 땅을 짚고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그 길도 여전히 안개로 가득 차 있었지만, 집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또 몇 시간을 걷자, 갑자기 등 뒤로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문 앞에 서있던 사람일지 아니면 안개가 만들어낸 괴물일지는 모르겠지만 뭐든지 나에게 친절한 것은 아닐거다. 그때부터 나는 잡히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달렸다. 그러자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쳤고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몸이 한껏 가벼워졌다. 나는 더 빠르게 달렸다. 달리고 더 달렸다. 그렇게 몇 분을 뛰자 등에서 느껴졌던 섬뜩함이 사라졌다. 따돌린 것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몇 분 정도 걸었지만, 아직 집이 보이지 않는다. 뭐, 올 때도 몇 시간이 걸렸으니 이상하지는 않아보인다.

 

한참을 오래 걸은 것 같지만, 아직도 집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엄청 많이 걸었다.

 

꽤 오래 걸은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집이 나타나지 않는거지?

 

내가 길을 잃은 건가? 아니야, 이 길이 맞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제발.

 

안개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다 안개 때문이다. 안개 때문이다. 내가 길을 잃은 게 아니다. 안개 때문이다.

 

저 앞에 사람이 보인다. 저 사람이 유일한 희망이다. 아니야, 안돼. 가지마. 나 좀 도와줘. 멈춰. 제발, 도와줘.

 

이제 그만 집으로 가고싶어. 살려줘.

 

집.

 

집이다. 앞에 집이다. 드디어 왔다. 집이다.

 

집까지 왔다. 드디어 집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런데 무언가 걸린 것처럼 열리지 않았다. 들어갈 수 없다. 안돼. 나는 다급한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열려야 된다. 제발 누군가 집에 있어라.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문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았다. 그런데 궁금증이 들었다. 누가 내 집에 들어와있는 거지? 나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문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고 몸에 힘을 주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나는 집안에 서 있는 사람을 보자 내 온 몸이 뻗뻗히 굳었다. 이제야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는 그저 짙은 안개에게 놀아났던 것이다. 모든 것을 깨달은 나는 절망했다. 피할 곳은 없다. 도망칠 곳도 없다. 내가 문 밖으로 나올 때부터 이 모든 것은 정해져있던 것이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나는 마지막 숨을 내뱉고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집 안에는 내가 서있었고,

문 밖에는 짙은 안개만이 떠다녔다.

 

 

 

출처: SCP 재단 한국어 위키 (by Didic)

라이선스: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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