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담 3

[괴담][무진기담] 유다의 마을

이제는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1970년, 가발공장으로 꽤나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던 아버지는, 중화학 공업으로의 급속한 체제 전환에 따른 낙오자가 되어 파산했으면 그래도 가오는 살았겠지만, 그저 평범한 사기에 의해 돈도 잃고 공장도 잃고 집도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부모님은 쪽방으로 쫓겨가 악착같이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며 동시에 빚까지 갚아야 했고, 이제 겨우 열 살을 넘었던 나는 그 생활양식을 유지하기에 거치적거리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댁으로, 남동생은 친할머니댁으로 보내졌다. 외할머니를 그전까지 본 적이 없었던 것은 분명 아닐텐데, 열 살 이전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나는 외할머니가 사는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외할머..

[괴담][무진기담] 그 비오는 날, 눅눅한 방울 소리, 무진과 곡성 그 사이의 안개 없는 폐촌에서

벌써 2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저는 원래 가방 하나만을 등에 지고서 이곳저곳을 떠돌며 여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해가 구름에 가려져 울적했던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길을 거닐다가 지쳐 잠시 외딴 곳에 위치한 낡은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사람 하나 없는 폐촌과 가파른 산 사이에 껴있어 이런 곳에도 버스가 다니는구나 하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잠시 의자에 등을 붙이고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졸음이 제 몸을 끈적하게 휘감았습니다. 그 찝찝한 졸음 때문에 저는 결국 순식간에 곯아떨어져 해가 산봉우리에 걸려 넘어가기 직전에 눈을 떴습니다. 폐촌과 산 가운데에 홀로 서있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절 지켜주었던 햇빛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

[괴담][무진기담]몽유무진

내가 나고 자란 무진을, 이제 떠나려 한다. 한 마디로 무진, 이라 해도 이런저런 곳이 있다. 저 산자락의 찾는 사람 적은 마을부터 저어기 남쪽의 도심, 거기서 다시 산 너머의 작은 포구에서 다시 배를 타고 나가는 섬 몇 개까지, 무진시는 지금껏 그 크기를 키워왔다. 내가 태어난 곳은 굳이 말하자면 무진의 바다라고는 조금도 안 보이는 산자락의 마을 쪽으로, 내가 태어나기 십 년 전쯤 무진시로 편입된 곳이다. 그 마을은 젊은 사람이 드문 농촌으로, 무진 시내까지는 비포장 도로인 탓도 있겠지만 차로 꼬박 30분 이상 걸리는 곳이었다. 마을 풍경은 누구나가 시골 마을 하면 떠올릴 풍경이었고, 다만 누가 무진 아니랄까봐, 매일 새벽 안개가 끼는 것만이 특이했다. 마을 중앙에는 큰 느티나무, 마을 입구에는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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