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일러두지만, 이 이야기를 읽은 뒤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보증하기 어렵다.
※ 자기 책임 하에 읽을 것.
※ 보증, 책임은 일절 지지 않음.
0.
5년 전, 내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친구 중 한 명이 죽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정신병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녀석’에게 빙의당했기 때문이었다. 내게 있어선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의 일부였지만, 얼마 전 옛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 계기가 되어 그날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글로 옮겨본다면 그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에, 여기에 글로 적어보고자 한다.
1.
우리들(A, B, C, D, 나)은 모두 가업을 이을 몸이었기에 고입을 준비하지 않고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 역시 우리들이 땡땡이를 친다면 다른 수험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체육대회가 끝난 뒤부터 조회만 마치고 학교를 빠져도 혼내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 친구 A와 B가 근처 저택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된 집이었는데, 갑자기 집주인이 목을 매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폐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마침 땡땡이를 친 뒤 죽치고 있을 장소를 찾아다니던 우리들은 거기라면 술과 담배를 마음껏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다음 날 아침에 바로 학교를 빠졌다.
밖에서 볼 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를 훌륭한 저택이었기에 이런 곳에 함부로 들어가도 괜찮을까 괜히 겁이 났지만, A와 B가 ‘괜찮다’고 부추긴 바람에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사전답사를 끝마쳤던 것인지 부엌문이 열려 있었다. 서재 같은 곳으로 들어가 창문으로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한 뒤 우리들끼리 술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큰 소리를 내질 못해 금방 싫증이 났고, 우리들 다섯 명은 집안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그때 C가 “저게 뭐지?”라고 말하며 방의 벽 위쪽을 눈치챘다. 벽 위쪽에 학교 음악실, 혹은 체육관의 방송실에 있을 법한 작은 창문이 두 개 달려있었던 것이었다.
“저기도 방이 있었나?”
자세히 보니 벽의 그쪽에는 문이 있었고, 문이 있는 쪽엔 마치 막기라도 하듯 책장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들은 목마를 타서 좌상단의 창문을 열어젖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째서 그 창문으로부터 악취가 나고 있었는지를 깨달아야 했었다.
2.
그런데도 당시 우리들은 몰래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억지로 창문 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방은 곰팡이와 먼지 천지였고 쉰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비가 새고 있는지 눅눅하기도 했다.
음악실은 아니었지만, 벽엔 직접 만든 것 같은 방음재가, 그리고 그 위에 벽지가 붙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습기 때문인지 벽지는 버석버석했다. 검소한 방이었는데 한쪽 구석에 자그마한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새까맣게 칠한 것 같은 사진 몇 장이 큰 테두리가 달린 사진첩에 들어가 있었다.
친구 A가 “뭐야 이거, 기분 나빠.”라고 말하며 사진첩에 손을 대자, 그 순간 액자 뒤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졌고 그 안에서 묶은 머리카락이 부스럭하고 나왔다. 종이는 부적이었다.
우리 모두 큰일 났다는 생각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얼굴이 창백해진 A를 보고 B가 빨리 나가자고 했고, B가 도망치듯 창문에 기어오르기가 무섭게 창문 쪽 벽지가 훅 벗겨졌다. 사진 뒤쪽에 있던 부적과 똑같은 것들이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대체 뭐야 이거.” 술이 약했던 C가 우욱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망했다. 진짜 위험해.” “지금 한가롭게 토하고 있을 때야? 서둘러!” 창문을 기어오르는 B를 나와 D가 밀어 올랐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뒤쪽에선 누군가가 “---익! 익!---”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분명 A였다. 동티가 난 것이리라. 너무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정신없이 반대쪽 방으로 기어올랐다. D도 올라와서 몸이 둔한 C를 끌어 올리는데 C가 “아파파!”라고 소리를 질렀다. “발 밟지 마!” 방 쪽에선 여전히 A가 이상한 신음을 내고 있었다. C가 젖 먹던 힘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는지, C가 이쪽 벽을 차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B! 어서 신주님을 모셔와!!” D가 뒤쪽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A에게 뭔가가 씌었어! 뒤쪽으로 가서 신사의 신주님을 데려와!” B가 맨발로 툇마루에서 달려갈 동안, 우리들은 C를 간신히 끌어 올렸다.
“발! 발!!” “아파?” “아프진 않은데 뭔가에 물린 것 같아.” 자세히 보니 C의 양말 뒷부분이 무언가에 물린 듯 동그랗게 자국이 나 있었고 침이 묻어 있었다. 계속해서 A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지만 우리들은 무서워서 도저히 창문 쪽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저 녀석 내게 해코지하려는 건가?” “해코지라니, A는 아직 살아있어.” “빠져나올 때 마구 찼어.” “이놈들!!!” 툇마루 쪽에서 운동복 차림의 신주님이 새파란 얼굴로 달려오셨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게냐! 바보 자식들!!” 함께 달려온 B는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있었다.
신주님은 “됐으니 너희들은 돌아가라! 여길 나가서 신사 뒤편 사무실의 요리에 씨에게 보여! 다음에 와라!”라고 말씀하시곤 우리들을 붙잡아 손을 뒤쪽으로 잡아 올렸다. 뒤에서 무언가 뿌득 하는 소리가 났다.
“좋아, 가라!” 그대로 등을 떠밀린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내달렸다. 그 길로 뒷산으로 올라가 신사의 사무실에 도착하니 작은 중년의 아주머니가 흰옷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혼난 것 같지만 무사히 도망쳤다는 안도감 탓인지, 그 뒤의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3.
그리고 A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이 신사로 몇 번 불려가기도 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으셨다. 단지 뒷산엔 더는 올라가지 말라는 말만 돌아왔다. 우리 역시 그런 무서운 광경을 직접 보았기에, 산에 갈 일 없이 학교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날, 학생주임 선생님이 우리를 불렀다. ‘지금까지의 비행에 대해서 결딴을 내시려는 건가, 맞을 준비는 됐다.’ 이렇게 각오하고 선도부실로 갔더니 B와 D가 앉아있었다. 신주님도 있으셨는데, 학생주임 선생님은 없었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신주님이 말했다.
“너희들, C가 죽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C가 어제 학교에 오지 않았던 것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학교를 빠진 뒤 우리가 맡은 A를 보러 왔었다. 병원 병문안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뒤쪽 창문으로 방을 들여다본 순간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우리들이 달려왔을 땐 이미 눈이 뒤집힌 채 숨이 멎어있었지.”
C가 죽은 걸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는 없잖나 하는 마음에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으나, 신주님은 진지한 눈으로 우리들을 보고 계셨다. “알겠느냐? A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라. C에게 있었던 일도 모두 잊어버려라. ‘그것’은 눈이 보이지 않고, 자신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겐 절대로 들러붙지 않아. 하지만 알고 있는 녀석이 있다면, 몇 년이 걸린들 ‘그것’은 반드시 찾아와 들러붙어 죽여 버린다. 뒷머리는 기르지 마라. 만약 ‘그것’과 맞닥뜨려 도망치게 될 때, ‘그것’은 먼저 머리를 붙잡으니까.”
그것만을 듣고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선도부실을 나왔다. 그때 신주님은 가위로 내가 기르고 있던 뒷머리를 잘랐다. 무언가 주술 같은 건가 생각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빡빡 깎았다.
졸업하고 가업을 잇는 것은 그 시점부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우리들은 각각 다른 현으로 흩어졌고 ‘절대로 만나지 말 것, 만난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인 척 행동할 것’을 서로 약속했다. 나는 1년 늦게 이웃 현의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과거를 잊어버린 채 생활에 몰두했다. 머리는 짧게 잘랐다.
하지만 이발소에 들러 ‘까까머리’로 해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나는 신주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있었다. 오늘 오려나, 내일 오려나 생각하며 3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뒤 재수하여 다른 현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방심하여 고향에 내려갔던 것이 실수였다.
4.
나는 할아버지를 아주 잘 따르던 아이였는데, 할아버지는 그해 정월에 돌아가셨다. 부모님은 전화로 “갑작스럽겠지만, 적어도 우란분(初盆)은 쇠러 와주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내려가지 말았어야 했었다.
신문을 사려고 역 매점에 들렸을 때 그곳에서 점원 일을 하던 중학교 시절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B와 D가 죽었다고 알려주었다.
B는 졸업하고 얼마 안 되어 자취방에 틀어박혀 목을 맨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방은 덧문과 커튼이 쳐져 있었고 방의 문이란 문은 다 걸어 잠갔는데, 그 위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꼼꼼히 붙였다고 한다. 납으로 자신의 귀와 눈꺼풀을 이어 붙이려고 했는데, 마지막까지 끝내 그걸 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었다.
D는 17살 여름에 시코쿠까지 도망쳤지만, 마쓰야마 인근 마을에서 팬티 하나만 걸치고 실실 웃으며 걸어 다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녀석의 뒷머리는 까마귀에게 파 먹히기라도 한 듯 머리카락이 뭉텅 파여 있었다. 게다가 녀석의 눈꺼풀은 절대 감기지 않도록 나이프로 잘라내려고 한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 지경이 되니 중학교 시절의 인간관계를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B와 D가 맞이한 참혹한 결말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건 이제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었다.
가슴이 조여 오는 것 같은 느낌을 참으며 집에 돌아왔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살던 고향은 ‘이미마와시’(忌廻)라고 해서 흉흉한 일을 겪었던 집은 본가가 있어도 우란분을 나라현의 절에서 쇠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나는 끌려온 것이었다.
그 후, 나는 39도 이상 고열이 계속되어 사흘 동안 고향 집에서 몸져누웠다. 이때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위패가 모셔진 방에 이불을 깔고, 흰옷을 입은 뒤 찬물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사흘째 되던 날 새벽, 꿈속에서 A를 만났다. A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는데, 거무스레한 데다가 눈엔 흰자위만 떠 있었다.
“너만 남았네.” “응.” “너도 어서 이쪽으로 와.” “싫어.” “C가 기다리고 있어.” “싫다고.” “네가 안 오면 C는 매일 괴롭힘을 당해. 거꾸로 매달려서 입으로 양말을 문 채 걷어차인다고. 불쌍하지도 않아?” “거짓말하지 마. 지옥이 그렇게 어설픈 곳일 리가 없잖아.” “하하하, 지옥? 진짜 지옥이란 말이지.”
그 순간 눈이 뜨였다. 숨소리에 식식거리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머리맡을 보니 할아버지의 위패에 금이 가 있었다.
5.
나는 생각했다. 만약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퍼트린다면, ‘그것’이 나를 찾아내 들러붙을 가능성이 작아지지 않을까 하고. 길게 써서 미안하지만, 대강대강 써서는 읽는 사람의 기억에 그리 남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 읽어버린 녀석들에겐 미안하지만, 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해라.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고 싶다면 이 글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퍼트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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