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어릴 때부터 이상한 규칙이 있다.
「저녁 여덟시 반에 목욕하지 마라」는 것.
어째서인가. 아버지나 엄마한테 이유를 물어본 적도 있지만, 잠자코 있을 뿐 가르쳐 주지 않는다. 부모님 뿐만이 아니다. 내 친척 인간들은 모두 저녁 여덟시 반에 목욕을 하지 않는다. 친척이 마누라나 남편을 데려와 가족에게 소개하면, 가장 먼저 목욕 시간 이야기를 할 정도다.
다만 의외로 조건은 느슨하다. 여덟시 반에 자기 집의 욕실에 들어가 있지만 않으면 된다. 즉, 8시 29분 59초까지 욕실에 들어가 있어도 되고, 8시 30분 1초에 욕실에 들어가도 된다.
이렇게 느슨하기도 해서, 점차 신경을 안 쓰게 된다. 지키기도 간단하니까. 저녁 먹는 시간이 습관화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잊어버리고 어긴다 하더라도, 별 일 없겠지 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내막을 밝혀두자면, 내가 기억하는 한 딱 두 번 규칙을 어긴 적이 있다.
첫번째는 단순한 부주의였다.
집을 나와 상경해서, 원룸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날 나는 꼭 보고 싶은 특집방송이 있었다. 일이 늦어서 8시에 귀가한 나는 일찍 목욕해두고 싶었다. 규칙 문제가 머리에 있었지만, 샤샤샥 씻고 나오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일어난 일은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짐을 팽개치고, 양복을 급히 벗었다. 목욕수건을 찾았는데, 비가 계속 오는 바람에 덜 말랐다. 장롱을 뒤져보면 안쪽에 마른수건이 있겠으나 시간이 아까웠다. 축축한 수건을 행거에서 벗겨내 욕실 근처에 두었다.
거기서 전화가 왔다. 회사 선배의 전화였다. 내일 집합 장소가 변경된다는 연락이었다. 젠장, 빨리 좀 끊어, 라고 생각하며 맞장구를 쳐댔다.
전화가 끝나고 휴대전화를 보니 시각은 8시 20분. 가자! 라고 생각하고 욕실에 들어갔다. 샤워기 물이 더워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찬물로 몸을 적시고, 세안제 거품을 내서 비적비적 얼굴을 씻고, 틀어놓은 채인 샤워기에 손을 헹구고, 속공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그 다음 몸을 씻고, 일거에 전신을 헹구어냈다. 마지막으로 린스를 하려고 용기를 쥐었는데 다 떨어져서 나오지 않았다. 리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욕실을 나왔고, 리필을 찾아 욕실로 돌아갔다. 그것이 생명의 고비였다.
여덟시 반.
욕실 의자에 앉았을 때, 문 입구 너머, 간유리 저편에 그림자가 보였다. 누군가 있다. 아까 설명한 대로 혼자 살았기 때문에 가족 누구도 아니다. 그림자는 쿵쿵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여덟 시 반이다! 욕탕에서 나가야 해! 그런 생각만 강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 그림자가 있는 것도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문을 열고 욕실을 나섰다.
욕실 안을 본 그 순간, 아무 것도 없는 욕실 천장 부근에서 물덩어리가 쏴아 하고 떨어져 내렸다. 방금 욕실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그 물세례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내 몸을 보니 머리카락과 몸이 완전히 건조하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방 안이 유난히 잘 정리되어 있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양복이 행거에 걸려 있고, 마르지 않은 옷이나 수건은 보송히 말라서 개켜져 있었다. 어질러졌던 방도 치워져 있고 이불이 깔려 있었다. 요리도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한심한 목소리로 절규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뒤, 나는 부모님께 전화해서 일어난 일을 낱낱히 고해바쳤다. 그러자 부모님은 이렇게 되물어왔다.
「젖었냐!?」
젖어있지 않다고 대답하자,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심드렁한 빈 대답 후 전화가 끊겼다. 새삼 등골이 오싹했다. 역시, 그 물세례를 맞으면 안 되는 거구나.
하지만 아주 상쾌하기도 했다. 우리 집은 "그것"이 있으니까 여덟 시 반에 목욕하지 않는 거다. 이상한 풍습이 아니라 다행이다. 역시 이유가 있는 거였다. 게다가 다른 집에는 없는 신비한 이유다. 목구멍에 걸려 있던 게 쑥 내려간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욕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 뒤 욕실에 방수 시계를 설치했다. 모든 것은 여덟시 반에 욕실 안에 있었던 내 탓이다. 그것은 틀림없다. 내가 바보였지. 다시는 방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두 번째는 사실 내가 규칙을 어긴 건 아니었고, 내 여자친구다.
일도 잘 하게 되면서 사생활도 여유가 생긴 무렵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욕실에서의 그 일을 기점으로 일도 여가도 다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 때는 즐거웠다. 그러다 여자친구가 생겨 동거하게 되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녀는 목욕시간을 신경쓰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가끔 늦게 돌아오면 여덟시 반 가까이가 되어서도 목욕하고 있는 일이 많았다. 긴급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이 씻고 있는 중에 들이쳐서 욕실에서 억지로 끄집어낸 적도 있었다.
몇 번을 말해도 들어주질 않았다. 의미를 모르겠어! 라고 고함칠 뿐이었다. 내가 필사적으로 그 중요성과 신비성을 설명해도, 히스테리만 더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정말 알아주길 바랬고, 또 좋아했기 때문에, 여자친구 생각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은 오고야 말았다. 그 날 나는 술자리 떄문에 귀가가 11시 정도로 늦어지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보니, 욕실 바깥의 불이 다 꺼져 있고, 욕실에서는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욕실에 들어가 보니, 여자친구는 욕실에서 두손두발을 마치 떼 쓰는 아이처럼 퍼덕거리며 갓난애처럼 울고 있었다. 유아퇴행 같았다.
왠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인사를 하고, 여자친구를 끌어안아 욕실에서 꺼냈다.
여자친구는 계속 울어댔다.
나는 다시 본가에 전화했다.
「젖었냐!?」
「젖었어」
「바로 그리로 간다!」
부모님이 오는 동안, 나는 여자친구에게 옷을 입히려 했지만, 몸을 닦아도 닦아도 물기가 닦이지 않았다. 계속 젖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심야에도 불구하고 날아서 왔는지 전화한지 약 4시간 후에는 내 원룸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말했다.
「다음 여덟시 반까지 기다릴 거다」
그때까지 나와 아버지와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정좌하고 계속 기다렸다.
여자친구는 계속 울어댔다.
점점 뇌내의 감각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결국 우리는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욕실에 나타나는 그건 뭘까. 왜 우리 집은 이럴까. 분명히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일임은 알았지만,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무단결근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전화가 오고 있었지만 모두 무시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전화통에 불이 났다. 계속 시끄러웠다. 그 밖에도 여자친구의 울음소리 때문에 걱정된 옆집 사람이 경찰을 부르거나 했지만, 엄마가 잘 처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8시 25분. 우리 가족은 여자친구를 욕실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3명 모두 이마를 바닥에 납죽 붙이고 여덟시 반을 기다렸다.
그 때, 무언가가 떠올랐다. 우리 집안은 증조할배도, 할머니도, 외삼촌도, 모두 욕실에서 죽었구나.
여덟시 반. 욕실 문 너머로 쏴아 하는 소리가 났다. 울음소리가 그쳤다.
문을 열자, 평소처럼 건강한 여자친구가 샤워를 하고 있었고, 온가족이 총출동해 들여다보는 우리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 뒤로 여자친구는 내가 뭐라 말하지 않아도 여덟시 반에 목욕하는 일이 없어졌다. 그날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대신, 예전의 그 내려가지 않고 목구멍에 걸려 있는 느낌이 돌아온 것 같다. 일단은 이 이야기를 내 가족 이외의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다.
얘기 끝. 좀 씻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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