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뭘 하나 설명하고 들어가자면 내가 일하는 놀이공원은 테마가 하나로 통일돼 있는게 아니라 네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공포 테마, 서부 테마, 할리우드 테마, 사탕나라 테마.
우리 공원의 주 고객층은 가족들이랑 커플들이다. 나는 여기서 연기 일을 하고 있는데 나처럼 연기자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전부 지정된 역할이 있다.
연기자가 아닌데 연기자인 ‘척 하는 것’들한테 한 명씩 붙는 거다.
왜 놀이공원이 이렇게 고객들에게 위험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닌 생물들을 데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정확한 건 아마 윗선에서나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추측을 해 보자면 아마 괴물들이 꽤나 훌륭한 피고용인이어서가 아닐까. 돈도 안 받고, 리얼해 보이고, 현실감까지 있으니. 하지만 너무 현실감이 있다면 곤란하니까(^^) 나 같은 연기자들이 여기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아까 공원에 네 구역이 있다고 했는데, 각 구역마다 연기자 두 명과 연기자가 아닌 것 두 명이 일한다. 그것들을 딱히 지칭하는 이름은 없는데, 평소에는 ‘비연기자’ 아니면 ‘괴물’ 같은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연기자들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공원 측에서 붙여 준 비연기자를 통제하는 거다. 실제로는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르는 이상한 존재들이지만, 우리 같은 연기자로 보이도록.
내 괴물을 예시로 들어 볼까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공포 테마 구역에는 유령의 집 두 개가 있다. 그 중에 큰 유령의 집은 폐병원처럼 돼 있는데 그 안에 롤러코스터가 있고, 밖에 있는 롤러코스터는 거대한 해골 조형물 주변에 빙빙 감겨 있는 게 있는 형태이다. 롤러코스터 레일이 해골 입을 통해 들어와서 해골 눈으로 나와서 다른 눈을 통해 들어가는 건데 솔직히 디자인을 정말 잘 한 듯하다.
여기서 나는 매일 지정된 복장을 입고 채찍을 들고 놀이공원 고객들을 쫓아다니거나 (채찍은 복장에 달려 있는 거다) 내 괴물한테 달려 있는 철로 된 목줄을 잡고 걔를 데리고 다닌다. 목줄이 어느 날 떨어지기라도 하면 뭔 일이 날지 두렵지만….
어쨌든 내 괴물은 큰 덩치에 복실복실한 검정색 털로 뒤덮여 있고, 둥글넓적한 머리 위에는 뿔이 나 있다. 눈 대신 빨간색 버튼이 달려 있고 입에는 뾰족한 이빨이 가득하다. 보통 혀를 축 내밀고 걸어다니면서 검은 침을 줄줄 흘린다. 커다란 발톱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스크래치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나는 애칭으로 괴물을 양말인형이라고 부른다.
스크래치는 누가 봐도 인형탈이다. 움직일 때도 인형탈마냥 뚝딱거리며 천천히 움직이고 자세히 보면 실밥이랑 솔기도 있다. 이 인형탈이 걸어 다니는 걸 직접 보게 되더라도 아마 아무도 이게 실제로 살아 숨쉬는 존재라는 걸 모를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출근 첫날에 알게 되었다.
출근 첫날, 내가 힘이 세서 연기자로 뽑힌 거고 괴물을 돌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던 게 떠오른다.
생각해 보면 면접 때 “겁이 없는 편입니까?” “야생 동물에게 공격받는다면 물리친다, 도망치며 도움을 요청한다, 숨는다 중에 어떤 행동을 취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기는 했었다. 그 때 눈치챘어야 하는데.
당연히 처음에는 나도 괴물이 있다는 걸 믿지 않았다. 이 차가운 현실이 와닿기 시작한 건 내가 ‘연기’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내 상사는 데일이라는 20대 후반의 불만 많은 얼간이다. 출근 첫날 데일은 내게 앞으로 입을 복장이라며 옷을 줬다. 이젠 입은지 3년이 넘어가는 복장인데, 설명하기 좀 어렵긴 하지만 채찍이 달린 괴물 사냥꾼 복장이다. 나름 편하기도 하고 꽤 멋있다.
어쨌든 내가 복장을 입은 후 데일은 나를 공포 구역 안에 있는 커다란 우리로 데려갔다. 아까 말했던 큰 유령의 집 옆에 있는 우리였는데,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 있고 위에는 빨간 글씨로 ‘스크래치’ 라고 써 있었다.
데일은 어깨에 지고 온 큰 봉투를 바닥에 던지고 말했다.
“이 안에 양 뒷다리랑 쇠고랑이 있을 거야.”
“양 뒷다리요?”
데일은 누런 이를 보이며 웃었다. “양을 좋아하더라고.” 그거면 설명이 된 것 마냥.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우리로 다가갔다.
“네가 길들일 수 있게 이번엔 내가 꺼내 주겠는데, 일단 길들이고 나면 열쇠를 너한테 줄 거야. 그 다음부터는 네 일 대신 안 해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
데일이 이상한 장난을 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간 불안함이 느껴졌다. 데일은 우리로 다가가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끼익이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고 데일은 우리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잠시 후, 아직 아침 햇살이 채 닿지 못한 우리의 그늘진 곳에서 스크래치라고 불리는 그것이 천천히 기어나왔다. 그것은 위협적으로 네 발로 걸어 우리를 나왔지만 나온 후에는 두 발로 일어나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것이 천천히 입을 열자 그것의 길고 끈적이는 혀가 덜렁거렸다.
나는 움직이는 인형탈을 좀 지켜보다가 데일을 바라봤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장난하세요? 탈 쓴 멍청이한테 지랄 말라고 해 주세요. 지금 제가 신입이라고 이러시는 거면…”
하지만 데일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거의 겁에 질린 듯 보였다.
“밥 줘.” 데일이 속삭였다. “밥 주고 목줄 걸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일단 데일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허리를 숙여서 봉투를 집어들고, 양다리를 꺼내서 움직이는 인형탈에게 흔들어댔다.
“이거 줄까?” 개한테 말을 걸듯 사람에게 말을 거니 멍청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뛰어와 내 손에서 양다리를 낚아채 갔다. 날카로운 이빨이 고기를 물어뜯었다.
이 생물이 고기를 갈기갈기 찢어 냅다 먹는 걸 보며 나는 인형탈을 쓰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갑자기 이상한 용기가 솟아 나는 그것 쪽으로 몇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그것의 반짝이는 검정색 털을 쓰다듬었다.
따뜻했다.
그것이 숨을 쉴 때마다 몸통이 오르락내리락하고 피부 밑의 근육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충격을 받은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봉투에서 목줄을 꺼냈다. 인형탈 목에 달려 있는 쇠고랑에 목줄을 연결하고, 잘 연결됐는지 확인한 후 목줄을 시험 삼아 당겨보았다. 그것의 목이 내 쪽으로 움찔 당겨졌다.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질 뻔 했지만, 금방 다시 균형을 잡았다. 다행히도 그것은 아직 나보다는 밥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데일이 내 쪽으로 걸어와 내 어깨를 토닥였다. 3년 후인 지금까지도 데일이 내게 유일하게 보여준 따뜻한 행동이다. 데일은 내게 스크래치의 우리 열쇠를 건네주고 잃어버리지 말라고 말했다.
나중의 일이지만, 혹시 다른 직원들을 괴물이 공격한 적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데일은 처음에는 웃음을 터뜨리다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말했다. “없어. 딱 한번 빼고.”
“언제요?” 내가 물었다.
데일은 다시 낄낄대더니 대답했다.
“너 직전에 일하던 사람. 일은 잘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 다리가 두 개 없는데 괴물 주인 행세를 할 수는 없잖아.”
내 표정을 보고 데일은 코웃음을 치더니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다. 스크래치가 그 사람보다는 나를 더 맘에 들어 하는 것 같다면서.
데일은 아마 이걸 읽고 있지 않겠지. 그러므로 데일새끼는 병신이라고 여기서는 말하겠다.
어쨌든 내가 아까 말했듯이 나는 내 괴물을 양말인형이라고 부른다. 내가 했던 묘사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면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나저나 양말인형이랑 나는 꽤 잘 지내는 편이다. 양말인형은 딱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 보통 나는 목줄을 쥐고 양말인형과 함께 공원을 돌아다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은 양말인형을 관람객에게 뛰어가게 하고, 관람객이 놀라면 목줄을 휙 당기면서 관람객한테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걸’ 이라며 사악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거다.
스크래치가 탈출한 적도 두 번 있는데,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요점은 나랑 스크래치는 꽤 사이가 좋다는 거다.
안타깝게도 다른 연기자들이랑 괴물들의 관계는 우리 같지만은 않다.
내 동료 얘기를 해 볼까 한다. 나랑 같이 공포 테마 구역에서 일하는 동료, 다리우스 이야기를 먼저 해 보겠다.
다리우스는 정말 착한데 스트레스에 좀 취약하다.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싶다고 자주 얘기하는데 내가 여기 3년을 일했는데도 계속 있는 걸 보면 맘에 드는 일을 못 구했거나, 아니면 그냥 하는 말 같다.
나는 출근 이틀 차에 다리우스를 처음 만났다. 당연하게도 전날 데일 새끼는 나를 다른 동료들에게 소개시켜 주지 않고 아주 대충 정보를 주고 갔다.
개장 약 30분 전, 나는 스크래치의 우리 옆에 서 있었다. 복장을 미리 챙겨입고 목줄과 강아지 간식을 든 채 양말인형을 풀어 줄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의사 복장을 한 남자가 나타났다. 가짜 피가 묻은 실험 가운이랑 수술용 마스크로 보아 아마 다른 연기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전 다리우스예요. 새로 온 조련사인가 보죠?” 그가 더듬거렸다. 대답할 시간도 채 주지 않고 그는 말을 이었다. “지금 저 좀 도와주셔야 돼요.”
“네.” 나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무슨 일인데요?”
“데일이 혹시… 이것들에 대해 얘기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우스는 안도한 듯 보였다.
“아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저한테도 붙은 괴물이 있거든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좀비 간호사처럼 보이는데 어쨌든 보면 아실 거예요! 근데 걔는 스크래치처럼 목줄을 달 수가 없어서 그냥 공원을 맘대로 돌아다니게 냅두는데… 아 제가 당연히 지켜보긴 하거든요. 근데 지금 어디로 갔는지를 모르겠어요! 애들 놀이기구 근처에 얘가 돌아다녔다가는 부모들이 난리칠 텐데! 저 좀 도와주세요 지금 시간이 너무 없어요…”
목줄이랑 강아지 간식을 버려두고 우리는 다리우스의 괴물을 찾으러 나섰다. 다리우스는 이미 공포 테마 구역은 확인을 마쳤다며 간호사는 아마 다른 구역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할리우드 테마 구역을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거기서 간호사를 찾진 못했지만, 그동안 다리우스는 내게 공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알려줬다. 비연기자들은 밤에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전부 우리에 가둬진다. 비연기자들은 밤새 갇혀 있다가 놀이공원 개장 30분 전이 되어서야 우리에서 나올 수 있다. 또 다리우스는 내게 다른 괴물들에 대해 이것저것 조금씩 말해줬지만, 결국 내가 직접 보는 게 가장 나을 거라고 했다.
할리우드 구역을 지나는 동안 다른 괴물은 만나지 못했지만 결국 간호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간호사는 음식 가판대 옆에 서 있었다. 다행히 가판대 주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 보였다. 간호사는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양쪽으로 살짝 휘청거리며 서 있었다.
허벅지까지 오는 간호사 복장은 다리우스의 복장처럼 검붉은 색으로 칠갑이 되어 있었는데, 다리우스 것과는 다르게 가짜 피는 아닌 듯했다.
“다행이다, 저기 있네요.” 다리우스가 중얼거렸다. “데일한테 죽을 뻔 했네.”
“그럼 이제 어떡해요?” 내가 물었다.
“그냥 우리 구역으로 데려가면 돼요. 쉬워요.” 다리우스가 대답했다. “얜 거의 뇌사 상태라서.”
나는 다리우스가 간호사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돌리는 걸 지켜봤다.
간호사의 얼굴이 드러나자 구역질이 올라왔다. 아래턱 절반은 아예 없어진 상태였고, 아래턱의 다른 절반은 머리에 간신히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듯했다. 드러난 혀에서는 피가 천천히 떨어졌다. 다리우스가 말한 대로 간호사는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나랑 다리우스를 지나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리가 근처에 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간호사의 어깨를 붙잡고 데리고 가는 다리우스를 따라서 나도 공포 테마 구역으로 돌아갔다. 아직 개장까지 1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는 걸 알고 나는 급히 양말인형을 우리에서 꺼내 목줄을 매었다. 그게 끝이다.
좀비 간호사의 얼굴이 한동안 계속 떠오르기는 했지만, 나는 놀이공원에서 내가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간호사가 아니라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이 공원에는 그보다 훨씬 두려운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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